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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들의 독립운동을 바라보던 형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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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 혹은 한국독립운동사를 연구하려면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이는 그 당시 생산되었던 무수한 원자료를 대상으로 한 자료보존의 문제, 확보‧선별‧공개여부의 문제, 판독‧해석의 문제 등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자료의 보존문제가 매우 중요하므로, 오늘날과 인접한 당시의 자료는 수량과 보존의 측면에서 보다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자료 내용의 판독과 해석 문제는 오히려 전근대시기 자료보다 더욱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이 시기에 생산된 텍스트들은 순한문체로 된 것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일문‧중문 또는 러시아어 등 당시 국제 정세나 활동영역 등을 반영한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아시아권에서 통용되었던 ‘한문’의 문리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 않으면 해석할 수 있는 자료의 폭이 매우 줄어든다. 특히 판결문이나 신문조서(訊問調書)와 같은 일제 측에서 작성한 일문 자료의 경우에도 한문투식을 그대로 반영한 문체나 단어가 많고, 사용된 문자도 대부분 ‘가타카나’로서 현대문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표기방식이 다른 용례가 많다.

<사진1> 일제강점기 발행된 판결문 예시(1918년 김병우 판결문)

예를 들면 문장에 “~候(そうろう, 소우로우)”가 붙어서 ‘~입니다’와 같은 한문투의 공손한 표현[雅語]으로 사용되었다거나, 문장 끝에 ‘~한 자이다’ 또는 ‘~한 것이다’라는 한문식 표현의 일어 표기인 “~モノナリ(ものなり, 모노나리, ~者也)” 같은,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한 점 등이 있다. 따라서 과거 일문자료의 해석 역시 한문 문리에 익숙해야 보다 쉽게 접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문 문리에만 익숙하면 이 시기의 자료들을 섭렵하는 것이 가능할까? 보통 고전번역을 공부하는 경우 주로 유교경전, 중국의 당송(唐宋)대 문장가의 글, 조선시대 발행된 문집 등의 글에 익숙하지만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나 문체와는 매우 이질감이 크다. 근대시기의 텍스트는 전근대시기의 한문투와 현대어의 중간단계로서, 한문 문리에도 익숙해야 하지만 전근대시기와 또 다른, 당시에 사용되었던 특수한 어휘나 문투를 모르면 판독과 해석이 매우 난해하다는 특수성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인접 시기’라는 점으로 인해 자료의 민감성이 커서 개인정보보호 등의 사유로 공개가 힘들다거나, 홍수처럼 많은 자료들 가운데서도 진위여부의 판별과 연구 상황에 맞는 자료의 선별 문제가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이번 웹진에 소개할 마지막 글에 이러한 문제를 앞서 제기하는 이유는 앞으로 이 시기의 자료를 집중적으로 판독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력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위해서이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앞에서 언급한 이슈들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일기’자료 가운데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가제)”이다. 이 일기는 안동의 여러 동성마을 가운데 우뚝이 명문가로 자리한 풍산김씨 오미마을에서 발굴되었다. 저자의 윗대로 3대에 걸쳐 꾸준히 기록되어 온 일기가 존재하여 조선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연속성의 측면으로 매우 뛰어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특히 우리 지역의 근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무수히 담고 있는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사진4> 김정섭일기-현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자료(사진출처, 영남권역센터)

이 일기는 총 6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지에 기록된 제목은 “조고일록(祖考日錄)”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원저자 김정섭의 손자 가운데 한 분이 이 책의 표지를 덧씌우고 표지에 제목을 기록하여 소장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이 책의 원제목인 ‘일록(日錄)’이라는 명칭에 따라 저자의 본명을 넣어 “김정섭일록”이라고 가칭하였다.

김정섭(1862~1934)은 지난달에 기고했던 글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다. 그는 본관은 풍산, 자는 경구(景九), 호는 위암(葦庵)이다. 부친은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 조부는 낙애(洛厓) 김두흠(金斗欽)이며, 심곡(深谷) 김경조(金慶祖)의 후예이다. 아우로 김이섭(金履燮), 김응섭(金應燮), 김규섭(金奎燮)이 있으며, 의열단 활동을 한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은 집안 종제(從弟)이고, 공산주의 운동을 펼쳤던 근전(謹田) 김재봉(金在鳳)은 집안 조카로 같은 마을에서 이웃하며 살았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고, 아우 김이섭, 종제(宗弟) 김창섭(金昌燮)과 함께 독립군자금을 모아 셋째아우 김응섭에게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그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할 사명도 있었지만, 각지 각계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아우와 조카들을 보살펴야 할 마음의 짐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던 배경에는 김정섭의 묵묵한 응원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그가 남긴 일기에 단편적으로 드러난다.

이 일기는 3.1운동이 막 잦아든 1920년 1월 1일부터 시작한다. 그는 평양 감옥에 갇혀 공판을 기다리는 아우 김이섭에 대한 걱정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3월 25일에 공판 날짜를 전해 듣게 된다. 김이섭이 평양감옥에 수감된 이유는 군자금 활동에 연루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집안 아우 김지섭이 대신 길을 떠난다.

1920년 3월 25일

이른 아침에 안동의 병기(秉淇)씨가 보낸 심부름꾼이 도착하여 평양의 정인성(鄭寅星)·강세형(姜世馨)이 보낸 두 통의 전보를 받아보니 공판이 이달 27일에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규섭 아우가 이미 어제 떠나 오늘 오후에는 그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섭(祉燮)이 가서 방청하고자 하니 성의가 매우 감동스럽지만 어떻게 사람마다 다 갈 수 있겠는가? 전송할 때 20원(円)을 주어도 받지 않으니 더욱 부끄럽다. 아들 인재(寅在)를 시켜 함께 보내어 그들은 예천으로부터 갔다. 집배원 편으로 둘째아우[김이섭]가 13일에 보낸 편지를 받아보니, 우선 큰 탈은 면한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편지와 옷을 부친 지 이미 수십 일이 지났고, 또 엽서도 두 통이나 보냈다지만 하나도 받아보지 못했으니 매우 의아하고 답답하다. 또 김명집(金命集)의 편지를 보니 공판의 기일이 바로 내일이어서 조카들이 오늘 출발해도 좇아 갈 수 없을 것이다. 희섭(禧燮, 김지섭의 아우)을 예천으로 보내 만일 공판 때까지 갈 수 없다면 달부(達府, 달성부)로 가서 그 맡은 장부를 마감하고, 평양으로 향하는 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지섭 아우에게 통지하였으나 과연 만날 수 있겠는가? 걱정된다. 낮에 하인이 예읍(醴邑, 예천)으로부터 돌아와서 들으니 지섭은 김천으로 가는 차가 없어서 그대로 머물고 내일 떠난다고 한다. 안동과 예천을 오가는 자동차는 오늘부터 비로소 뒷산 신작로에서 개통된다.

이렇게 집안 아우와 조카들을 떠나보낸 그는 4일 뒤인 29일 새벽에 맞은 어머니 기일에 그 감정이 북받쳤다.

1920년 3월 29일

새벽에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니, 보고 싶고 그리운 슬픔을 견디기 어렵다. 하물며 셋째아우 응섭은 이곳을 떠나 중국에 있으면서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둘째아우 이섭은 평양 감옥에 갇혀 6개월이 지났으며, 셋째아우 규섭과 여러 숙질들은 그의 공판을 보고자 평양에 머무르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여러 달 노심초사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도 희소식이 찾아왔다. 4월 5일에 아우의 공판이 잘 해결되어 아우가 풀려난다는 소식을 받았고, 4일 뒤인 9일에 그가 오미동 마을로 무사히 들어왔으니 그 기쁨이 매우 컸을 것이라 짐작된다. 다음날 아우가 무사히 돌아온 기념으로 그는 마을 잔치를 열었다.

1920년 4월 9일

인마(人馬)와 아들 헌재(憲在) 및 마을 안팎의 소년 10여 명이 예천읍에 들어가서 둘째아우를 기쁘게 맞이하여 밤이 깊은 후에 비로소 돌아왔다. 그는 6달 동안 감옥에 갇혀 온갖 고초를 겪었고 나는 집에서 애태우고 걱정하며 그 시름으로 죽을 것만 같았는데, 다시 하늘의 해를 보는 것 같으니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움을 비할 데가 없다. 그러나 해외에 있는 응섭은 다시 어느 때에 모이겠는가?

김정섭은 자신의 셋째아우 김응섭에 대해서도 걱정의 나날을 보냈다. 이 일기가 작성된 시기에 김응섭은 이미 중국으로 망명한 후였다.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우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애가 타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특히 중국에서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더더욱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22년 11월 5일, 안동군에 갔다가 돌아온 아들 헌재에게서 ‘김응섭이 현재 길림지역에 있으면서 법무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서너 해 동안 숨어 다녔던 아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라고 하며 자신의 걱정을 드러내었다. 이후 수개월이 지나 1923년 9월 5일에 드디어 응섭의 편지를 받게 된다.

1923년 9월 5일

우편을 통해 먼 땅에 있는 아우 응섭의 편지를 받았다. 비록 편안하다는 소식이었으나, 생계에 대책이 없다 하니 어찌하고 어찌할까? 지난 달 28일자 편지이니 지금으로부터 7일 전의 편지가 된다.

그는 바로 다음날 곧바로 답장을 쓰고 아우에게 보낼 생활비 명목의 자금을 빌리기 시작했다.

1923년 9월 6일

하회의 응관(應貫)에게 사람을 보내 응섭에게 보낼 편지 세 장을 겸하여 부쳤고, 또한 자금을 빌려 달라는 요청을 들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찌 감히 학수고대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자금을 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다음날 응관으로부터 답장을 받았지만 뜻처럼 되지 않아 더욱 애가 타는 심정이 되었다. 노심초사하던 끝에 결국 6일 뒤인 12일에야 드디어 자금을 부칠 수 있게 되었다.

1923년 9월 12일

아들 헌재가 집으로 돌아올 때 예천읍에 내려가 중국 장춘(長春)에 100원을 부치고 그로 하여금 먼 곳에 있는 응섭 아우에게 소식을 전하게 했다. 돈은 희섭(禧燮) 종제에게 빌린 것이다.

그에게 돈을 빌려준 ‘희섭’은 바로 추강 김지섭의 아우였다. 그들 집안은 서로 파조는 달랐지만 한 마을에 살면서 상부상조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아우의 소식을 들은 것은 약 2달 뒤인 11월 16일이었다.

1923년 11월 16일

어제 신문을 보니 상해(上海, 임시정부) 내무총장(內務總長) 김구(金九)가 길림(吉林)의 배일(排日)거두인 김응섭과 더불어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그의 거처를 일본 영사(領事)가 주의하고 있다 하니 두렵고 염려되었다.

이렇게 그는 신문이나 편지로 아우에 대한 단편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그와 다시 만나는 날까지 한시라도 긴장과 걱정을 늦추지 않았다.

그의 걱정은 친아우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앞서 김이섭의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으로 갔던 집안 아우 김지섭은 어느 날부터 마을을 떠나는 일이 잦았고, 이를 매번 걱정하고 있었다.

1921년 10월 1일

지섭 아우가 지난 10일경 북경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현애에서 전해들은 이 말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하니, 인심이 매우 험하여 두렵다.

1923년 5월 7일

지섭은 지난겨울에 윤병구(尹炳求), 유석현(兪錫賢)과 함께 권총을 가지고 경성의 자산가들을 협박하였고, 지방법원 판사 백윤화(白允和)를 협박한 일도 또한 이번 구초(口招, 죄인의 진술)에서 나왔기에 아마도 유석현이 막 체포되었다면 반드시 고된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진술할 것이다. 지섭은 이미 작년 말에 국경을 넘어 갔기 때문에 돌아오기는 쉽지 않으니 탄식하고 탄식했다.

1923년 12월 5일

주재소로부터 지섭 아우의 신분과 재산 등을 조사했으니 의아했다. 또 듣기에 각처에서 그의 집을 묻고 종적을 수사한다고 했다.

그러던 중 그가 의열단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문 등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걱정이 더더욱 커져만 가던 어느 날 다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1923년 12월 26일

일전에 기섭(起變)이 도쿄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지섭이 양력 1월 5일(음력 11월 25일)에 일본 궁성의 문 앞 니주바시[二重橋]에서 폭탄을 던져 다이쇼제[大正帝] 부자의 폭살을 꾀했다가 결국 실패하여 잡혀 들어갔다고 했다. 이는 극비사항이라 결국 신문에 나지는 않았지만, 그처럼 형경(荊卿)과 같은 대담한 남아가 이후에도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염려되기 보다는 그가 장했다.

1924년 1월 4일

저녁에 듣기에 지섭이 과연 1월 5일(음력 11월 29일)에 니주바시에서 폭탄을 던졌다가 곧바로 체포 되어 감옥에 갇힌 지 달포 남짓 되었으나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옥중에서 그의 아우인 희섭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태연하며 조금도 힘든 기미의 말이 없었고, 분개하며 말한 뜻이 사람으로 하여금 기운을 돋우었으니 진실로 담대한 남아이다. 또한 역수(易水)를 건너는 비분강개한 의사(義士) 형경(荊卿)과 비교해도 덜하지 않으니 창창대해의 역사(力士)라고 할 수 있다.

김지섭의 일왕 폭살 기도사건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곧바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사건이었으므로 그들은 이를 극비사항에 부치며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김정섭은 이미 서신왕래를 통해 그 전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지섭에 대한 걱정은 이내 죽음을 무릅쓰고 의로운 일을 했던 그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후로도 그가 옥중에서 지은 시를 받아 그 의기를 칭찬하며 자신도 그 시의 내용에 이어 답시를 짓기도 하였고, 공소(控訴)와 이감(移監)을 여러 차례 겪은 사실, 복역기간의 가감에 대한 소식 등을 듣는 즉시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1927년 1월 6일

오늘 다이쇼제의 국장(國葬)일이라서 장차 사면이 있을 것이다. 지섭과 조카 재봉이 신문 상으로는 모두 방면된다고는 하지만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1927년 1월 10일

일본에서 대사면을 하겠다고 한 것이 유명무실하여 지섭의 복역기간이 20년으로 정해졌으니 매우 한탄스럽다.

결국 김지섭은 1928년 2월 20일(음 1월 29일)에 일본의 치바[千葉]형무소에서 의문의 순국을 하게 된다. 김정섭은 그로부터 이틀 뒤인 음력 2월 2일에 지섭의 옥중 순국 전보를 받았다.

1928년 2월 2일

흐리고 춥다. 일본 치바현[千葉縣]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지섭 아우가 지난 달 29일에 옥중에서 죽었다는 전보가 도착하여 가서 곡하였다. 애통하구나! 의열(義烈)한 선비의 죽음이여!

그는 보다 더 자세하게 그의 유해가 이송되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며칠에 걸쳐 이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그의 장례날인 2월 7일의 기사만 소개하겠다.

1928년 2월 7일

안동군에 들어가서 먼저 보내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지섭의) 죽음이 의문스러우니 시신을 내어주지 않고 태워 재로 만들어 보내왔다고 했다. 그리고 경계가 삼엄하여 사회주의자들이 호상소(護喪所)를 설치하지 못하였고, 매장은 도(道)의 지시에 따라 행할 것이라고 한다. 매우 통탄스럽지만 어쩌겠는가.

잠시 뒤 전보가 또 도착하였다. 지섭의 상여가 풍산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지만 이미 시간이 지나 가볼 수 없었다. 해질 무렵 장례 행렬이 도착하여 그쪽을 바라보며 곡을 하였으니 매우 애통하다. 이미 재가 되어버렸는데 무엇을 알겠는가. 안동과 풍산의 순사 대여섯 명이 시종일관 경계를 삼엄하게 하였으며, 대구 신간회(新幹會) 2명과 안동 신간회 3명, 풍산의 소작회(小作會) 5명이 경호해서 왔다. 막내아우 규섭 역시 풍산시장에 도착했다. 사방의 노소들이 와서 곡하는 자가 매우 많았으니, 하늘이 내려준 본성이 누구나 같음을 알 수 있었다. 한밤중에 순사가 희섭, 병목(秉穆), 둘째아우를 불러 기다리게 하고 ‘총각의 예’에 빗대어 신속하게 매장하게 했다. 무덤을 평평하게 하여 봉분하지 않았으며, 친족 외에 모이는 손님은 절대 금지하였다. 또한 빈소를 차리지 못하게 하고 도장을 받아서 가버렸으니, 분하고 원통하여 죽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들으니 서경(瑞卿) 형이 대구에서 10원(円)을 부의로 보냈고, 계기고(啓期告, 부고)를 도산서원에 통지하였으니 서원에서 통문을 내어 사림장(士林葬)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했다 한다. 지극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저들이 이처럼 염탐하여 살피고 있으니 더 이상 거론할 수가 없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아우들과 조카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걱정과 염려로 애를 태우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의로운 행동에 대해 비분강개하며 칭찬하기도 했다. 당시를 살았던 한 선비의 진솔한 모습이 이 일기 자료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사실은 그 역시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을 넘어 ‘의로운 행위’에 대한 칭송과 폭압적인 일제의 행위에 대해 비분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꼿꼿한 선비의 기상이 잘 느껴지는 부분이다.

올해 2월부터 이곳 웹진에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연재’로 소개했던 10여 편의 글 모두 어쩌면 안동인의 항일정신이라 단언할 수 있는 ‘의로움’, 다시 말해 ‘올곧음’을 실천한 사례를 선별하여 역사적 사실과 자료를 들어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독립운동 51년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더러는 죽을 줄 알면서도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장렬히 산화한 척사의병들로, 더러는 실력양성을 통해 구국을 꿈꾸었던 혁신유림과 애국계몽가들로, 나라가 무너지자 죽음으로 항거한 자정순국자들로, 민족정신의 대통합을 이끈 3.1운동과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무수한 이들의 희생정신으로, 민족주의 또는 사회주의의 방략을 들고 만주, 중국 관내, 일본, 미주 등지에서 활약한 무수한 독립운동가들로 위대한 우리 역사의 한 허리를 장식하였다. 그들은 사상과 방략이 다르고 활동의 무대도 달랐지만 오로지 의로움의 실현, 즉 일제의 폭압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정신은 같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남자현 지사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한 유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이러한 정신을 역사 안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목적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를 넘어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정신을 배워 나가야 한다. 필자는 그 과제를 이제 민족의 ‘통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