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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푸르게, 오늘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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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숲이 저만치서 다가온다. 발길 따라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숲은 하늘을 가리다가 금방 푸른 하늘을 열어젖힌다. 무한 천공이다. 일렁이는 푸른 물결인 양 무상무념에 젖는다. 낙동강이 지어내는 말간 물결은 하늘과 녹음으로 우거진 숲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 산의 아랫도리가 강물의 나이테를 새기고 있다.

도산면 퇴계로를 거닐다 좌우 수려한 산림 속에 자리한 경북 산림과학 박물관에 든다. 도로변 입구 ‘山에서 未來’를 새기고 있는 거대 표지석과 마주한다. 어쩌면 삭막한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숲에서 미래를 그려보는 삶을 말해줄 법도 하다. 천변만화로 다가오는 숲은 많은 것을 지어내며 열려 있기에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한 산림의 필요성을 얘기하려 한다.

경북 산림과학 박물관은 2004년 5월 25 개관했으나, 2019년 세계 각국 코로나 팬데믹 사태 및 내부 전시 시설 보완을 목적으로 2020년부터 2023까지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 활용 도입 및 과학 원리를 미디어 기술과 융합해서 2024년 10월에 재개관했다. 물론 그즈음 코로나 팬데믹은 안전하게 수그러든 후였다. 특별히 새롭게 개관된 전시는 숲의 생태환경 중요성과 산림 문화 체험 공간을 확대 조성하여 숲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깊게 각인시키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정면 천정의 5분짜리 영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늘에서 촉촉이 내리는 생명수가 불모지를 일깨우자 척박한 땅에 고생대 양치식물이 고개를 내민다. 이에 질세라 각종 식물이 우후죽순으로 성장하여 숲을 이루면 어느새 중생대를 거쳐 신생대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라 싱그러운 자연의 소리와 동식물의 다양함과 산림의 풍요로움이 펼쳐진다. 일명 ‘숲의 세월’이다. 짧지만 숲의 형성 과정이 다채로운 숲속 생명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에 박자를 맞추듯 전시관 입구 벽면의 영상 또한,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명 ‘숲과의 조우’이다. 정적에 휩싸인 흑백의 나무 실루엣이 누구든 어서 숲속으로 들어와 보라고 손짓하듯 숲의 잔영을 드리운다. 어느새 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숲속으로 빨려드는 기분이다. 입구인 1층 엘리베이터가 먼저 2층 전시실인‘생명의 보금자리인 숲’으로 걸음을 이끈다.

2층 복도에 27종의 나무들이 한 줄로 서서 자신의 겉모습과 속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마치 나무들이 미인대회라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툭박지거나 혹은 매끈하거나 울퉁불퉁한 껍질을 가진 나무들의 표면이 종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개성적인 사람의 모습처럼 나무들 역시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그만의 특징과 성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각종 껍질과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나무가 걸어온 긴 시간 속을 헤아리게 한다.

각기 겉모습이 다른 나무의 껍질처럼 나무의 속살 또한 모두 다르다. 유사한 듯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고운 나무의 속살이 제각각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둥글게 나이를 그려낸 나무가 있는가 하면 불규칙적으로 나이테를 가진 나무들도 있다. 당시 생존을 위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이테에 스며 있다. 각종 나무의 나이테가 그만의 연륜을 헤아리며 힘겹게 지냈을 법한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줄 듯도 하다.

계단 난간을 따라 매끈한 속살을 보여주며 줄지어 서 있는 직사각형의 나무패널 역시 자신만의 개성을 헤아려 보게 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패널을 두들겨본다. 무겁고 어둔하게 또는 둔탁하거나 거칠게 와닿는 소리, 가볍고 상쾌한 소리 등 다양한 나무 소리가 귀를 쫑긋거리게 한다. 피아노를 치듯 패널을 “똑똑” 두들겨 소리의 음역을 헤아리며 나무의 이름을 가늠해 보는 재미도 좋다.

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로 만든 럭셔리한 세 개의 의자가 멋진 포토존을 이룬다. 마치 우아한 왕좌의 자리처럼 독특한 모습으로 제작된 나무 의자가 잠시 쉬었다 가게 한다. 색다른 경험의 세계로 이끌린 마음은 기하학적으로 조각된 멋스러운 의자에 번갈아 앉으며 이런저런 모습에 취한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나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절로 숲의 황홀경 속에 빠지는 듯하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자연물을 일상생활에 이용했다. 특히 조선 시대 유명한 화가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자연물에서 채취한 풀떼기나 나무들이 생활 도구로 쓰였음을 볼 수 있다. 풀이나 나무가 생필품으로 쓰였으며 짚으로 짚신을 만든다거나 바구니 혹은 가마니를 짜고, 나무는 도리깨 등으로 만들어 썼다. 다시 말해 나무는 건축재료, 악기나 무기, 군사 장비, 운반 도구, 농기구, 가구 등 일상생활에 두루 사용되었다. 이는 오래전 선조들은 숲과 함께 하는 삶을 영위해 왔음을 엿보게 한다. 인간은 숲에서 얻은 것으로 일상을 꾸리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숲과 인간은 서로 기대고 의존하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숲을 이루는 나무는 뿌리에서부터 몸통, 줄기, 잎, 열매에 이르기까지 불필요한 게 하나도 없다. 일찍이 나무의 열매는 인간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나무의 껍질이나 씨앗, 잎, 꽃, 뿌리 등은 좋은 약의 재료가 되었다. 특히 전시된 40여 종 전시물은 사람들의 몸을 치유해 주는 천연 건강 약재로 수많은 효과와 효능을 가졌다. 자연에서 얻는 모든 것은 몸이 필요로 하는 이로운 약이 되어 건강을 지켜준다. 이렇듯 먹거리 제공, 연료, 건축 및 약재를 구하게 하는 숲은 자원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

채집된 각종 식물 표본들 역시 유익한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어 인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음나무, 두릅나무, 뽕나무를 비롯하여 길가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잡풀 중 쑥이나 질경이, 쇠비름, 민들레 등 각종 풀이 먹거리이자 건강식품으로 사용된다. 그 옛날에는 풀들도 의료에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허준의 『동의보감』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론 독초도 있지만, 독초는 어떻게 법제하느냐에 따라 섭취가 가능한 의료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듯 자연은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많은 것을 베풀어 준다.

또한, 건강식품이나 치료의 목적으로 애용되는 나무도 있다. 특히 LED로 고로쇠나무 채취 방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물이 간접적인 체험을 가져다준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다양한 미네랄 및 아미노산,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이 많아 뼈 건강이나 면역력 강화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음나무, 개두릅나무 등은 염증이나 신경계 순환계, 소화기에 효능이 좋아 약으로 쓰이며 새순은 식용으로 널리 이용된다. 이처럼 나무는 그 기능과 성능에 따라 끝없이 베풀 줄을 아는 유익한 자원이다.

일찍이 인간은 숲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를 잘 말해주는 다양한 전시물이 주로 어린 아동이나 학생들에게 시각적이며 간접적인 체험을 하게 한다. 이를 말해주듯 조상들은 예로부터 자식이 태어나면 그 성별에 따라 자연물을 이용하여 문에 금줄을 달았다.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며 부정한 것을 막고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했던 옛날 금줄 만들기 체험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잊어가는 지난 풍습을 알아가게 하는 것이요, 어른들에게는 사라진 그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상이 지어놓은 실루엣을 따라 금줄 만들기와 풀 싸움 체험을 해보며 동심의 세계에 빠져본다.

숲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 딸이 태어나면 시집갈 때 가구를 만들어주려 오동나무를 심었으며, 아들이 태어나면 선산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었다. 훗날 삶이 다하는 날에 관을 짜기 위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을 산림과 가까이해야 하는 인간들은 숲에서 태어나 숲으로 돌아가는 자연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가 주는 다양한 혜택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나무의 또 다른 쓰임새에는 폐목을 이용한 다양한 나무 의자나 화분 받침대를 들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무로 제작된 것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작은 소모품에부터 장식품, 가구, 건축 등 생활 전반 어느 한 곳에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박제된 동물과 조류

아기자기한 예쁜 무늬의 떡 틀이나 탈, 새, 알, 코끼리, 기린, 작은 배, 호랑이, 거북이, 기하학적인 형체 등 무궁무진한 나무 조각은 언제봐도 아름답고 멋지다. 모르긴 몰라도 나무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무는 누구의 손에 맡겨지느냐에 따라 그 모습과 형체는 변화무쌍하게 바뀌기 마련이다. 나무의 다양한 쓰임새는 삶의 지속적인 보존 유지와 직결된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층 전시실에서 슬로프를 걸으며 1층으로 내려오다 벽면 둘레를 장식한 38개 식물 표본과 마주한다. 경상북도수목원으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다. 압축된 표본들을 보노라면 어린 시절 들판에서 각종 풀과 나뭇잎이나 꽃잎 등을 채집해 당시 교과서 속에 넣어 납작하게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새삼 되살아난다.

다방면으로 산림이 쓰임새가 많은데다 인간의 이기심이 더해지니 무차별적인 숲 파괴를 자행하게 만든다. 울창한 산림은 좋은 벌목 대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산불 혹은 택지 개발 등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사라지는 산림 훼손은 위험을 초래한다. 특히, 산림파괴 부작용 중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지구 온도 상승이다.

무분별한 자연훼손은 산림의 황폐화를 초래 / 기후변화가 보여주는 위기

지구의 평균 온도가 매년 1도씩 상승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의 가장 큰 현상으로는 허리케인을 비롯하여 폭염, 폭우, 가뭄 등 이상 기온이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어 결국 생태계 파괴를 가져온다. 생태계 파괴는 먹이사슬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동식물의 생존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그것은 동식물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인간 역시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된다.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것은 서로 공존을 위해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으며 깊게 관계를 맺고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산림의 소실은 지구의 위기다. 숲이 병들면 지구도 따라 병드는 것은 당연하다.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기후변화와 산림파괴는 우리 강산의 동식물 멸종을 가져온다. 모데기 풀이나 섬국수나무, 섬개야광나무 등을 비롯하여 붉은 박쥐, 담비, 수달, 산양 등이 그것이다. 한반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도 각종 멸종에 처한 동・식물이 생겨나고 있다. 생태계 위기는 삶과 직결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생물의 멸종은 인간 멸종의 길이기도 하다.

숲의 위기는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인간에게 마침내 핵무기 사용으로 함께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결국 지구를 자멸로 이끄는 인간의 이기적인 독단이 낳은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산림 훼손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각종 문제를 낳는 가장 큰 원인이다. 병든 숲은 병든 삶을 낳고 건강한 숲은 건강한 삶을 낳는 법이다.

전시된 내용이 산림의 중요성을 말해주듯 일찍이 삼국 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산림 정책들을 시행해 왔음을 살펴보게 한다. 오래전 선인들은 산림의 중요성을 알고 숲의 보존 유지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양하게 시행해 왔다. 1차에서 6차까지 산림 계획을 통하여 숲을 올바르게 이용하고 잘 가꾸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삶이 계속 이어지는 한 산림 가꾸기는 멈추지 않는다. 풍요로운 산림은 모두에게 삶의 터전이니까.

나무는 생존하는 동안 끊임없이 피톤치드를 뿜어낸다. 누구나 숲에 들어서면 때때로 무겁거나 혼란하게 다가오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심폐 기능이 튼튼해진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맑은 공기가 전신에 스며들어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숲은 끝없이 맑은 공기를 선사해 준다. 여러모로 좋은 역할을 하는 나무는 탄소 중립에 꼭 필요한 중요한 자산이다.

매 순간 인간이 내뿜는 탄소의 배출만큼 나무는 그에 상응하는 산소를 끊임없이 보내준다. 즉 인간이 지어놓은 탄소의 배출량을 나무가 0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무가 탄소 중립을 이룰 때 건강과 행복은 유지될 수 있다. 숲이 탄소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먼저 산림을 아끼고 가꿔야 한다. 산림을 가꾸고 아껴줄 때 숲은 유익한 것을 베풀어 준다. 맑은 공기는 건강한 삶과 직결되기에 언제까지나 지켜내야 할 숙제로 다가온다. 이렇게 숲의 고마움을 헤아리다 보면 문득 동화작가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른다. 아낌없이 다 내어주는 나무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숲의 다양성은 생명의 다양성이다. 생명의 다양성은 풍요로운 삶의 넉넉함과 아름다움으로 연결된다. 균형 있는 생태계의 순환은 건강한 산림의 먹이사슬이다. 해서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한 산림자원을 가꾸고 보존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숲의 보존은 삶의 원활한 공존과 순환의 수레바퀴다. 그러하기에 숲의 가치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산림의 보존은 영구적으로 삶의 복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산림은 미래를 열어가는 자원의 원천이자 희망임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