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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 일대에 수 놓인 색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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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지열이 들끓는다. 불볕더위에 붉은 꽃을 한껏 피워 올린 배롱나무가 도로 따라 줄지어 서서 뜨거운 열정을 불태운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낮의 더위를 식히려 땅거미가 내려앉은 월영교로 향한다. 월영교 및 야외민속촌 길에 수많은 인파로 분주하다. 모두 여름밤 문화 피서를 즐기기 위함이다.

안동의 문화와 역사가 깃든 달빛 가득한 곳. 월영교 주변 일대에서 약 열흘간 펼쳐지는 안동 국가유산인‘월영야행’이 올해로 8번째를 맞았다. 8/1~8/10까지 펼쳐지는 화려한 불빛과 각종 공연, 체험, 먹거리들이 깊어 가는 한여름 밤을 들썩이게 한다. 안동호를 둘러싼 일대 행사장에는 연일 흥과 멋과 감흥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전편의 야외민속촌 1편 후 이어가려던 2편 이야기는 다음 달에 하기로 하고, 이달은 ‘월영야행’에 빠져든다.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잰걸음은 임청각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8/7~8/9까지 임청각의 군자정에서 뮤지컬 ‘서간도 바람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리의 현수막이 무심한 마음을 끌어당겼다. 제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룡 선생 손자며느리인 허은 여사가 직접 경험하고 쓴『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에서 따 왔다.

이상룡 선생 국무령 취임 10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실경 역사극은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만주 망명 및 혹독한 추위와 냉대 속에서의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독립군 양성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투쟁은 대형 태극기 앞에서 열창하는 우렁찬 노랫소리와 함께 클라이맥스를 이루었다. 지역 배우들의 열띤 연기가 잦은 박수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 밤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월영교의 ‘월영(月影)’은 달과 그림자를 말한다. 1971년 안동댐 건설로 당시 수몰된 월곡면 음달골에 있던 월영대가 낙동강 기슭으로 옮겨오게 되면서 월영교의 월영이 되었다. 또한, 이 지역에 살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고자 만들어진 다리 이름이 되기도 한다. 즉 아내가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지어 만든 모양을 다리 모습에 담았다. 하늘의 달, 물속의 달, 우리 눈동자 속의 달 그리고 달은 사방 어디서든, 우리에게 은근한 정감을 불러낸다. 밤하늘의 달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월영이란 이름은 늘 우리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으로 월령교는 뿌연 안개에 곧잘 감긴다. 안동호에서 피어나는 자욱한 안개는 볼 때마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젖어 들게 한다. 호수 위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안개는 유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같다. 안개는 종종 주변 경치를 백색 장막으로 잠식시키다 어느 순간 있던 그대로를 온전하게 토해내며 조용히 사라진다. 백색의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츰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침잠했던 사위가 평온함으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행사 기간, 어둠은 산에서 살금살금 내려와 목조 교량을 휘감는다. 다리 난간 사이로 촘촘히 들어선 전통 등갓이 높은 장대에 매달려 은근한 빛을 뿌린다. 어둠에 잠긴 안동호는 하늘의 달과 전통 등갓에 빛을 얻어 속살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전통 등갓과 양쪽 난간 포토존에 놓인 커다란 달은 은밀한 빛을 발산하고, 멀리서 보이는 팔각정자인 월영정의 불빛은 찬란한 보석처럼 빛을 뿜어낸다.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색찬란한 분수는 천사의 날개인 양 하염없이 파닥거린다. 걸음마다 수 놓인 빛은 깊어 가는 밤을 황홀경으로 채워주었다.

‘월영야행’은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꾸며졌다. 젊은이들이 그 옛날 보부상 차림으로 전통놀이에 빠져있었다. 지난 여러 가지 놀이인 제기차기, 윷놀이, 비석 치기, 오징어 게임, 줄넘기 놀이 등이었는데 주로 아이들에게는 호기심과 재미를 부추기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지난 추억을 불러내게 했다. ‘조선 시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공간’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져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느끼며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날의 행사는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달빛이 전해주는 안동의 국가유산을 중심으로 8夜가 구성되었다. 공연 프로그램으로 하회 별신굿 탈놀이, 신웅부전, 힙합, 가요, 동화 인형극, 민요, 해금, 국악 한마당, 현악 앙상블, 뮤지컬, 통기타, 여성중창, 엄마 까투리, 장구 퍼포먼스, 퓨전 음악, 농악, 불꽃놀이 등이 마련되어 뜨거운 밤의 열기를 식혀준다. 또한, 각각의 공연들을 접하다 보면 매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어 밤의 정취인 8夜로 꾸며진 각종 테마를 들여다본다.

야경(夜景) 밤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빛의 파노라마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빛의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월영교를 수놓은 휘황찬란한 빛은 달빛과 더불어 밤의 경치를 맘껏 즐기게 한다. 또한, 관풍정에서 시작되어 늘어진 여러 가닥 줄 위로 쏟아져 나오는 줄불놀이인 선유야화(양반의 불꽃놀이) 역시 찬란한 빛에 취하게 하며 우리 지역의 문화를 느끼게 한다. 바람개비 거리와 월영 달빛정원의 빛도 빼놓을 수 없다. 곳곳에 설치된 알록달록한 빛은 만개한 꽃을 연상하게 하는가 하면 별빛과 보석을 떠올리게 하는 듯하다.

야로(夜路) 오색찬란한 빛은 선성현객사와 석빙고로 오르는 산길과 오솔길도 좋고, 대로변의 길이든 안동호를 두른 호젓한 길이든 어느 길 하나 가리지 않고 어둠을 밝혀준다. 오방색의 등불이 수놓은 길을 따라 오른 선성현객사에서의 국악 연주는 정겨운 밤의 속삭임인 양 숲속에 퍼져나갔다. 선성현객사 한쪽 오솔길 모퉁이에 자리한 커다란 달이 수시로 빛의 색깔을 달리하며 호젓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달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심상을 달리하며 익어가는 것이리라.

숲속 오솔길을 밝히는 청사초롱은 마치 행복을 찾아 떠나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어둑한 산길을 따라 불 밝힌 청사초롱은 월영대를 지나 석빙고로 이어졌다. 돌로 만들어진 석빙고는 겨울에 알맞은 크기로 재단한 얼음을 보관하는 저장 창고다. 보물로 지정된 석빙고는 조선 후기 저장 창고로 1740년에 축조되었으리라. 현재는 냉장고로 인해 사계절 음식 보존에 걱정할 것이 없지만, 옛날에는 땅속 깊이 저장고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찍이 여러 번 석빙고를 방문했지만, 내부에 들지는 못했다. 마침, 행사 기간이라 석빙고 문이 개방되었다. 남쪽 출입문으로 들어서 몇 계단을 내려가자, 화강석으로 지어진 석빙고가 그 속살을 보여주었다. 땅속이라 냉기가 끼쳐왔다. 무더위가 일시에 사라진다. 내부 경사는 땅속 저장고라 빗물이 스며들면 경사면을 통해 배수구로 향하도록 했다. 단단함과 견고함이 느껴지는 얼음 저장 창고가 문득 방공호를 연상시키는 것은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그전에 보았던 외부 석빙고 위쪽에 불룩한 세 개 환기구 기억을 더듬으며 안쪽에서 환기 구멍을 찾으려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대여섯 마리의 박쥐들을 보았다. LED 불빛에 석빙고 내부는 대낮처럼 환했어도 박쥐는 신경 쓰이지 않는 듯 꼼짝없이 천장에 붙박이가 되어 있다. 높은 천정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박쥐들은 낯선 이의 방문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자는 듯 그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조선 시대 장터를 재현한 월영 보부상의 행렬은 이색적인 볼거리다. 거리의 보부상 차림 청년들이 오가는 이들에게 전통놀이를 즐기다 가라고 한다. ‘만인의 꿈’월영 만인소는 대형 종이가 벽보처럼 붙어 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이나 소원 혹은 남기고 싶은 내면의 말을 자유롭게 쓰도록 해 놓았다. 뭐니 뭐니해도 ‘월영행사’의 백미는 영원한 그리움과 애틋한 정이 머물러 있을 법한 월영교다. 행사 기간 월영교 한 바퀴도 거닐지 못했다면 ‘월영야행’을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회탈 MBTI 조명거리는 특별하다. 차전장군, 각시탈, 부네탈, 양반탈, 이 구역 슈퍼샤이라 명명한 떡다리탈 등 익살스럽게 생긴 탈들이 마치 사람처럼 서로 다른 성격 유형을 가졌다. 사람의 16가지 성격을 탈에 이입시켜 사람처럼 인격을 부여했다. 하나하나의 탈들을 올려보는 재미가 무척 좋다.

지금 한창 꽃이 만발한 무궁화동산에 놋다리밟기, 차전놀이, 안동 삼널기 그네가 자리 잡았다. 포토존의 월영야행 마스코트 월영이는 작은 미끄럼틀 위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휘영청 밝은 달빛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한때의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모습이다. 한글 포토존, 짚신 트레킹 등 산발적으로 놓여 있는 지난 문화를 접하게 하고 다채로운 빛에 취하게 만든다.

야사(夜史)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거리는 야외민속촌 길로 역사가 머물러 있는 박물관이다. 어느 곳이든 역사가 깃들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던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달빛 아래 어린이 골든 월영별과 시험을 치러 장원 급제자를 뽑는 행사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의 우리 문화유산을 체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야설(夜說) 달빛을 따라 전하는 안동 문화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개목나루의 황포돛배와 문 보트가 지어내는 달밤의 전경은 흥과 멋을 자아내게 한다. 희극적인 익살스러움으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비롯하여 놋다리밟기, 차전놀이 등은 지난 우리 문화를 알아가게 만든다. 또한, 월영공원 내에 자리한 6.25전쟁, 3.1 운동, 일송 김동삼 어록비 등은 나름의 뜻을 가지고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모습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목 나루에서 펼쳐지는 각종 공연과 선성현객사의 국악 연주, 은근하게 내려보는 달빛을 벗 삼아 남반 고택의 동화마당은 조선의 인형 소극장을 연상하게 하여 전통음악과 그림자 연극을 이끌었다.

야화(夜畵) 은은한 달빛을 받아 이루어지는 각종 체험은 색다른 심상을 불러낸다. 특별히 원이 엄마의 편지를 곱씹어 보며 젊은 연인이 즉석에서 편지를 써서 달빛 우체통에 넣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무척 신선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야행 마스코트 월영이 꾸미기와 포토존 이벤트, 전통한복 체험, 안동의 전통 민속주, 전통 음식, 수운잡방, 종가 음식, 향토 음식, 막걸리 체험, 키링 만들기, 짚풀 공예 등 약간의 마음을 낸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야식(夜食)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했다. 어디를 가든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는 없다. 안동시립박물관 야외는 안동 음식들로 채워지는 월영 객주는 저잣거리의 전통음식으로 손님을 이끈다. 대개 전통음식은 토속적인 음식이라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찾는다. 포장마차로 다가온 객주는 음식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쉬는 공간이자 농산물 판매 장터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정겹게 다가오는 조각달과 별빛 그리고 길게 늘어진 LED 불빛에 취해 야식을 즐기는 모습이 평온하다.

영화롭고 즐거움이란 뜻을 가진 영락교는 달빛 아래 젖어 드는 안동호의 멋스러운 전경을 보여주는가, 하면 다양한 먹거리로 젊은 층의 구미를 끌어당긴다. 다수의 푸드트럭이 영락교 위에서 군침이 절로 도는 각종 음식으로 행인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젊은이들의 취향과 입맛을 고려한 각종 푸드트럭의 음식들이 사뭇 시원하고, 매콤하고,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달콤한 향기를 연신 흘렸다. 맛 나는 음식 앞에서 더위를 잊는다.

야숙(夜宿) 달빛이 내려다보는 오래된 집은 고즈넉한 정감이 찾아들게 한다. 지역민을 비롯하여 타지에서 방문한 객들이 머물만한 장소로 월영교 인근 고택들이 많이 이용된다. 월영야행 기간 동안 인근 예움터 마을의 구름에 리조트나 임청각 혹은 예끼 마을의 선성현문화단지 한옥체험관에서 잠을 청해보는 것도 좋다. 이들은 모두 한옥으로 잠깐이나마 옛 문화와 생활상을 체험하고 느껴볼 수 있다.

야시(夜市) 깊어 가는 밤, 장은 때때로 즉흥적으로 물건을 구매하게 하기도 하지만, 정말 필요한 물건을 적재적소에 그것도 저렴한 가격으로 살 때도 있다. 특히 월영장터와 월영 보부상은 마치 만물상 같다. 없는 것 없이, 다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옛날에 쓰이던 아기자기한 물건이나 현재의 물건들을 들여다보게 하며 공연히 마음을 이끈다. 안동 사랑 상품권을 들고 길게 늘어선 각각의 부스들을 기웃거리며 멈칫거리게 했다.

며칠 동안 밤의 여행에 취했다. 안개를 머금은 안동호 위의 조각달 모양의 문 보트가 무지개색을 발산하며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를 반복했다. ‘월영야행’ 기간 동안 빛의 향연에 취하고 음악에 빠지고,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 거리를 찾아 헤맸다. 이는 안동의 문화와 역사를 접하게 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했다. 열흘 동안 우리 지역의 국가유산이 밤에 깨어나 수많은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의 여행을 즐기도록 했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즐비했던 야행은 시원한 밤의 문화를 이끌었다.

그렇게 여름밤의 멋진 정취는 월영교의 황홀한 불빛 속으로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