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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전기의병의 기록, 「안동의소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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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 안동축제관광재단에서 운영하는 「2019년 안동문화필 온라인 매거진」에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이라는 큰 주제로 매달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소개하는 연재코너를 맡게 되었다. 안동인의 독립운동 역사는 길고도 꾸준했고, 맹렬하면서도 투철했다. 이러한 안동 독립운동의 정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알리면 좋을까 하는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무수한 고민 끝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은 많은 연구자 또는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생각되어, 이번 코너에서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실제 유물들의 내용을 소개하는 장으로 활용 해 보려 한다. 이번에 연재할 「안동의소파록」을 필두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소장‧전시된 독립운동 관련 유물을 소개 하겠다.

일반적으로 ‘전기의병(前期義兵)’은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이라는 국가적 사안을 두고 1895년과 1896년 즉 을미‧병신년에 대대적으로 일어난 ‘의병(義兵)’을 이른다. 안동에서는 이보다 조금 더 앞선 시기인 1894년(갑오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사건인 ‘갑오변란’으로 처음 의병이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자정순국자를 배출하였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처음 의병이 일어난 곳이라는 사실과 함께 안동을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타이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해 주었다.

내앞마을과 안동독립운동기념관(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안동시 임하면에는 600여년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의성김씨 집성촌 내앞마을[川前]이 있다. 이곳은 입향조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후예들로 무수한 명망 있는 학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지만, 한국 독립운동 나아가 세계 식민지해방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안동인의 독립운동 흔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성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과거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시절을 이어 경북‧안동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중요한 유물들을 전시‧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안동의소파록(安東義所爬錄)」은 안동 전기의병(을미‧병신의병) 시기인 1895년 12월(음) 무렵 작성된 의병 지휘부 조직과 명단이다. 51년간 치열하게 전개된 우리 독립운동 역사의 사실상 시작점을 알리는 실제적인 유물로서 의미가 상당하다.

안동의소파록(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이 유물은 길이 52.8㎝, 폭 20㎝의 한지의 표면에 상‧하 2단으로 나누어 직책 명칭과 인명을 필사하였다. 읽는 순서는, 처음 맨 오른쪽 위에 ‘안동의소파록’이라고 적힌 제목에서부터 왼쪽방향으로 이어가며 세로쓰기로 명단을 적은 후 다시 하단 왼쪽에서 오른쪽방향으로 이어서 적었으므로, 이 방향을 따라가면 된다. 총 30가지의 직위에 46명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맨 가운데 ‘권인술(權仁述)’이라는 인명의 경우 바로 윗부분 ‘유격장(游擊將) 김회락(金繪洛)’의 왼쪽에 작게 권점을 찍어 이곳으로 포함시켜야 함을 표시하였다.

일단 이 유물의 제목인 ‘안동의소파록’의 명칭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맨 처음 ‘안동(安東)’은 이 문서의 작성주체 또는 작성처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의소(義所)’는 의병을 논의하고 준비하기 위해 임시로 구성한 집단 또는 장소를 의미하며, 의병소(義兵所)‧의려소(義旅所) 등의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안동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이들 집단 또는 장소를 ‘안동의소(安東義所)’라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록(爬錄)’은 어느 특정한 사안을 실행하기 위해 담당자를 나누어 해당 직임에 임명하는 명단을 기록함 또는 그 기록물을 의미한다. 어느 사람들을 해당 직임에 나누어 임명한다는 용어를 보통 ‘파정’한다고 하는데, 한자를 ‘派定(파정)’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고문헌에서는 ‘爬定(파정)’이라는 한자도 종종 쓰고 있다. 이처럼 이 명칭의 속사정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우리는 ‘안동의소파록’을 ‘안동의’ ‘소파록’ 이라고 잘못 끊어 읽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안동의소’ ‘파록’이 옳은 읽기 방식이다.

위의 파록에 기록된 직임과 성명은 다음과 같다.

안동의소파록(安東義所爬錄)

직임		성명
대장(大將)		권세연(權世淵)
부장(副將)		곽종석(郭鍾錫)
참모(參謀)		류연박(柳淵博) 이상기(李相基) 류선영(柳善榮) 권병추(權炳錘)
내방장(內防將)		김진림(金震林) 김진의(金鎭懿)
외방장(外防將)		강담(姜{金+覃}) 류응목(柳膺睦)
좌익장(左翼將)		이운호(李運鎬)
우익장(右翼將)		권용현(權用鉉)
전봉장(前鋒將)		김익장(金翼張)
돌격장(突擊將)		권진순(權鎭淳)
유격장(游擊將)		김회락(金繪洛) 권인술(權仁述)
석격장(石擊將)		권재추(權在錘)
척후장(斥堠將)		김홍락(金鴻洛)
초모장(招募將)		권옥연(權玉淵)
도서기(都書記)		류정호(柳廷鎬) 이건(李{玉+建}) 류필영(柳必永) 강황(姜璜) 이정좌(李廷佐)
서기(書記)		이운구(李雲九) 김하림(金夏林) 김진휘(金縉輝) 류연즙(柳淵楫) 김한락(金翰洛) 이종만(李鍾萬) 이성구(李性求) 류회식(柳晦植)
정제유사(整齊有司)		김주병(金周秉) 김윤모(金潤模) 이만구(李萬求)
종사관(從事官)		이중삼(李重三) 김서락(金瑞洛) 류창식(柳昌植)
출령(出令)		류헌호(柳憲鎬) 김호락(金浩洛)
중군(中軍)		류완(柳琓)
관량(管糧)		김종연(金鍾淵)
관재(管財)		김항락(金恒洛)
모병(募兵)	도감(都監)
	유사(有司)
모량(募糧)	도감(都監)
	유사(有司)
사병(司兵)	도총(都摠)
	유사(有司)
행부상도총(行負商都摠)		권돈연(權敦淵)
군문도총(軍門都摠)
직일(直日)		강봉원(姜鳳元) 이수병(李壽炳)

<표 3> 안동의소파록의 직임과 인명

위의 표를 보면 총 30가지의 직위에 46인의 인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병도감‧모병유사‧모량도감‧모량유사‧사병도총‧사병유사‧군문도총의 7개 직위는 선임되지 않았고, 대부분 전근대시기 군제(軍制)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성씨‧문중별 인물을 파악 해 보면 권씨 8인, 김씨 14인, 곽씨 1인, 강씨 3인, 류씨 10인, 이씨 10인이다. 이력이 자세하지 않은 인물 몇 명을 제외하면 임하 천전[내앞]‧서후 금계[검제]‧일직 귀미[구미]‧봉화 해저[바래미] 등의 의성김씨, 임동 대평[한들]‧수곡[무실]‧예안 주진[배나들] 등의 전주류씨, 봉화 유곡[닭실] 출신의 안동권씨가 가장 다수를 이루고, 봉화 법전 출신의 진주강씨, 일직 소호 출신의 한산이씨를 비롯한 진성이씨, 고성이씨, 풍산류씨, 재령이씨 등 안동과 인근의 명망 있는 가문 출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곽종석’의 경우 이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제자로서 한주학파(寒洲學派)에 소속된 ‘경상우도’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자이다. 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물들이 영남 퇴계학파의 종맥을 이은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부장(副將)에 선임되었지만 실제로 부임하지 않았다.

이 문서의 발급‧작성 연도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긍연(李兢淵)의 기록인 『을미의병일기(乙未義兵日記)』에 따르면 1895년 12월 6일(음) 안동부에서 열린 향회(鄕會) 다음날 지휘부를 편성하면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의병 조직을 꾸린 안동의병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를 대장으로 한 예안의병(12월 9일(음) 결성)과 연합하여 1895년 12월 12일(이하 음력)부터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해 전투를 벌였다. 14일까지 치러진 첫 전투에서 패하고, 다시 15일 새벽에 공격을 개시했지만 이마저 패전하여 외지로 퇴각하였다. 이후 1896년 1월 13일까지 군사를 재정비 하여 19일에 다시 안동부로 진입하였고, 24일에는 지휘부를 개편하였다. 하지만 대장 권세연은 29일에 이르자 이전 전투의 패배를 자책하며 사퇴하였다. 「안동의소파록」에 기록된 안동인의 첫 을미의병은 이렇게 마무리 되고,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를 새로운 대장으로 선출하여 다시 의병항쟁을 이어나갔다.

안동의진 제1차 전투도(『경북독립운동사Ⅰ의병항쟁』 참조)

국가와 민족의 위기에 ‘의(義)’라고 하는 명분을 내세워 자발적으로 일으킨 군대를 ‘의병’이라고 한다. 동양의 고전인 『맹자(孟子)』의 말을 빌리자면,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수오(羞惡)’란 자신의 옳지 못한 점을 부끄러워하고[羞] 남의 옳지 못한 점을 미워할 수 있는[惡] 마음을 의미한다. 종합해보면, 이들은 국가와 민족의 위기를 자신의 잘못인양 부끄러워했고, 의롭지 못함으로 우리의 국권을 강제 농단한 일제(日帝)의 행위를 미워하여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대응 했던 것이다. 세력과 무기의 열세를 알면서도, 다시 말해 ‘죽을 줄 알면서도’ 한결같이 목숨으로 대항하였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살아남은 이들은 경술국치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정순국’으로 일제에 항거하였고, 더러는 만주 등 외국으로 나가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더러는 파리장서운동에 서명하는 등 외교적 방략으로 항거하기도 했다. 이들은 명분만 앞세운 고리타분한 양반이 아닌, 당시의 대의명분과 자신의 입장‧처세를 ‘의’라는 기준에 두고 행동으로 실천한 당대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