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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사』를 통해 본 동산 류인식의 역사인식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는 흔히 사전적인 의미로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 또는 기록’이라고 한다. 인간의 활동은 여러 가지 유의미한 흔적들을 남긴다. 이러한 흔적이 비슷한 패턴으로 어느 한 공간과 시대에 주류적인 공감층을 형성하고,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지으며 서서히 굳어진 것이 일종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는 이러한 문화의 변천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따라서 역사는 ‘인류가 살아온 모든 인문 활동의 총체’라고도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학이란 바로 이러한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필자는 예전 학부 시절 역사이론 관련 수업에서 역사에 관해 매우 흥미 있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역사가 인간이 남긴 모든 사건들의 집합체라면, 그 개개의 사건들은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고, 그 행위는 인간의 사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을 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는 역사적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또는 구조, 시공간에 대한 인식, 인과관계, 우연과 필연에 대한 정의 등 여러 가지 기본요소들이 있는데, 이것이 역사인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항들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명말 청초(明末淸初)에 살았던 대학자 왕부지(王夫之)는 전통 유교적 역사관인 주리론(主理論)과 복고주의 사관(史觀)에 반대하고, ‘도수기변(道隨器變)’ 즉 ‘도는 기용(器用)의 변화에 수반된다’는 주기론(主氣論)적 사고를 기본구조로 삼아 역사현상을 바라보았다. 따라서 역사는 순환하지만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진보사관을 견지했는데, 그는 만년에 이러한 역사관의 기본틀 안에서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읽고 역사적 사실들을 평가한 사평서 『독통감론(讀通鑑論)』을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역대 정통론(正統論)에 대한 부정, 치통(治統)과 도통(道統)에 대한 색다른 시각, 이에 따라 파생된 철저한 화이관(華夷觀), 공천하(公天下)에 대한 탁월한 견해 등 여러 가지 역사인식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당대에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왕부지가 생존했던 시대는 한족(漢族) 명나라가 망하고 이민족 청나라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중국 전체의 역사를 크게 ‘치통과 도통이 함께 이어지지만 그 힘이 미약하던 시기’, ‘같은 한족끼리의 이합집산을 통해 통일왕조와 열국시대가 번갈아가며 변화하던 시기’, ‘한족과 이민족이 번갈아가며 통치하던 시기’ 등 3시기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문화 즉 ‘도(道)’가 어느 쪽으로 통하여 이어지는가를 명제한 ‘도통’을 설정하고 이민족 정권의 정통성을 강력히 부정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실제로 남명정권에 가담하여 항청(抗淸)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동산(東山) 류인식(柳寅植)의 생애와 현실은 왕부지의 시대와 시공간은 달랐지만 상황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는 조선 후기 이른바 ‘보수유림의 텃밭’이라 불리는 안동에서도 전주류씨 삼산문중이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유년기 및 청년기의 대부분을 유림의 교육과 생활 방식대로 살아왔다. 그는 대내적으로는 우리의 도를 지키려는 위정(衛正)과 대외적으로는 서구열강 특히 일제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척사(斥邪)의 방략을 그대로 이어받아, 선영수호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단발령과 국모시해 사건에 반발하며 일어난 을미의병에 가담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03년경 서울 유학 당시 알게 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의 논쟁을 통해 개화사상에 눈을 뜨고, 중국의 계몽사상가 양계초(梁啓超)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 등 신서적을 접한 이후 사상의 일대 변혁을 이루었으니, 이처럼 개화한 유림을 ‘보수유림’이라는 말에 상대하여 ‘혁신유림’이라 일컫는다.
 
 
<사진3> 양계초의 음빙실문집
 
 
류인식의 생애와 활동은 앞서 기고했던 협동학교(協東學校) 관련 글에서 어느 정도 언급하였다. 그는 1907년 안동에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를 설립·운영하였고, 나라가 무너지자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경학사(耕學社) 교무부장을 맡았다. 이후 1912년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귀국했다가 일제에 피체되었고, 풀려난 후 고향에 남아 민족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1920년대 조선노동공제회 · 신간회 등에서 활동하며 사회운동에 매진하기도 했지만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등에도 참여하여 교육운동도 꾸준히 펼쳤다. 그가 이러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곧 그가 가졌던 현실인식이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해 ‘민족’을 바탕에 둔 치열한 역사인식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사진4> 류인식이 만주에서 귀국하기 직전에 쓴 편지
 
 
현재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상설전시관에는 그의 역사인식의 총체와 요점을 함께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인 『대동사(大東史)』가 전시되어 있다. 이 책은 그가 일제의 무단통치 아래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1910년대에 편찬한 역사서이다. 총 3권 1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권 필사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군조선에서 경술국치(1910)까지 약 4243년간 우리나라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형식으로 서술한 순 한문체 통사(通史)이다. 저술 시기는 그가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1912년 협동학교를 통한 교육운동을 재개한 후 1913년 대종교에 가입한 시기 즈음해서 집필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며, 1917년경 초고가 완성되었고, 1920년 후반까지 수정·보완을 계속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류인식 선생의 집안에서 기증한 간찰자료 가운데에는, <1922년 족질(族姪) 류봉희(柳鳳熙)가 보낸 간찰>에서 “귀하께서 편찬하신 『동사(東史)』(대동사를 지칭함)를 매양 열람하고 베껴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고, <1926년 사돈 정건모(鄭建模)가 보낸 간찰>에서는 “(상대가 쓴 원고를) 탈고(脫稿)하는 일은 이미 10권 이상 했다고 들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의 몰년이 1928년이니 이 책은 사실상 그의 생애 후반기를 모두 들여 저술한 현실인식과 역사관의 압축판이자 인생의 역작인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지역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던 협동학교가 1919년 강제로 문을 닫기 전까지 교재로도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사진5> 『대동사』
 
 
체제는 다음과 같다. 1책 첫머리에 4편의 도표(圖表)가 실려 있는데, 순서대로 「대동연혁지총도(大東沿革之總圖)」 · 「대동연혁국차도(大東沿革國次圖)」 · 「대동족통도(大東族統圖)」 · 「대동역대일람도(大東歷代一覽圖)」이다. 이어서 서문 격으로 서술된 17조의 범례(凡例)에는 주로 이 책의 편찬 방식과 체제, 제목을 짓게 된 경위, 참고로 채택한 구사본(舊史本)과 채택 사유, 논찬 및 서술 방식 등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하여 기술하였다. 본문은 「단씨조선기(檀氏朝鮮紀)」(1책) · 「남북조기(南北朝紀)」(1~3책) · 「고려기(高麗紀)」(3~5책) · 「조선기(朝鮮紀)」(6~11책)의 순서로 되어 있다.
 
 
<사진6> 『대동사』 1책에 실린 도표
 
 
그의 역사인식의 특수성은, 우선 단군을 국조(國祖)로 하고 배달족을 우리 민족의 종족(宗族)으로 삼아 기자조선과 부여를 각기 남조(南朝)와 북조(北朝)로 설정한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남조는 삼한-가야·백제·신라-(통일)신라로, 북조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제 지역에 흩어져 살던 숙신·말갈·여진 등을 포괄하여 부여·옥저-고구려-발해로 각기 이어지다가 고려대에 통일하여 조선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단순히 왕조 체제의 변혁·교체에 따른 정통론에 입각한 서술이라기보다는, ‘배달족’이라는 단일민족의 이합집산과 변천과정을 체계화 한 ‘종족 중심의 역사관’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물론 그의 역사인식이 대종교 내지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 역사관과는 다소 다른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단군조선을 중요한 위치에 두고 역대의 왕조를 통일국가, 열국시대, 남북조시대 등으로 파악 하였지만 그들이 비판하였던 기자조선의 존재와 기자동래설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림의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또한 그가 저술한 사설(私說) 가운데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 대하여[朝鮮與日本關係]」에서도 일부 서술하였듯 고대 일본의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신라를 정복했다는 설을 큰 비판 없이 수록 한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이민족의 강압적‧폭력적 지배 아래에 처한 암울했던 시대에 우리 민족의 정통을 세우고 이를 체계화하였으며, 다시 저술을 통해 교육과정에 반영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발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독립운동사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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