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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연꽃과 다섯 그루의 계수나무가 아름답구나! 오미고택마을
 

    

 
길게 이어지는 다섯 줄기의 산 능선과 너른 들판으로 둘러싸인 오미고택마을은 경상북도 신도시 둘레길 제6코스 광석산 산등성이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평소 청렴결백한 성품과 백성들에게 베푼 선정으로 1592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된 허백당 김양진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오미고택마을 전경과 마을 안내판>
 
1629년 유연당 김대현의 막내아들 김숭조가 증광문과에 급제했다. 김숭조는 인조 임금 앞에 나아가 사은숙배를 올리며“저희 집안 여덟 형제가 모두 소과에 급제했고, 막내인 제가 이번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서 형제 중 다섯 번째 대과 급제자가 되었습니다.”라며 인사를 올렸다. 이에 인조는“너희 집안은 여덟 연꽃과 다섯 그루 계수나무를 배출하였으니, 팔련오계지미八蓮五桂之美로구나!”라며 칭송하고 그의 집안이 세거하는 마을 이름을‘오미동五美洞’이라고 지어 내려주었다.
 
<김대현의 여섯째 아들 김응조의 어사화,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풍산김씨 학사종택>
 
이야기에 소개된 유연당 김대현은 허백당 김양진의 증손으로, 김양진이 오미마을에 정착한 이래 여덟 아들을 모두 과거에 급제시킴으로써 임금에게 마을 이름까지 하사받을 정도로 김양진 이후 문중을 크게 부흥시킨 인물이다.
 
  <유연당 김대현이 여덟아들과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죽암서실>

  
먼저, 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버드나무가 인사를 하고 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왕버드나무숲은 400여 년 전 유연당 김대현이 아홉 아들을 생각하며 심은 나무로, 아홉 그루의 나무가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구시나무거리(구수나무거리)’라고 한다. 나무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그루가 죽어버리고 말았는데, 김대현의 아들 중 한 명이 17세 되던 해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익사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여덟 아들이 장성함에 따라 남은 버드나무 여덟 그루도 울창하게 자랐고, 지금은 그마저도 다섯 그루가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 옆으로는 붉은색 봉황문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인조가 팔련오계를 칭송하며 ‘오미동’ 이름과 함께 하사한 것을 2021년 후손들이 다시 복원하였다.
 


<구시나무거리와 인조가 하사한 봉황문>  
 
‘고택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마을 안에는 허백당 김양진의 후손들이 살아온 고택들이 모여 있다. 입향조 김양진의 종가인 허백당 종택을 비롯하여 유연당 김대현과 그 아들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영감댁과 그들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도림강당, 김대현이 여덟 아들과 문중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건립한 죽암서실, 선조들의 선양에 힘쓴 김중휴와 독립운동가 김재봉의 흔적이 남아있는 학암고택, 팔련오계의 막내 김숭조의 7세손 김상구가 분가하면서 지은 삼벽당, 그리고 풍산김씨 문중들의 화합의 장인 화수당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정겹다.
 
<마을 입향조 허백당 김양진의 종가, 허백당 종택>
 
<학암 김중휴와 독립운동가 김재봉의 학암고택>

<팔련오계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영감댁>
 
김양진의 12대손 김중휴는 가문을 선양할 목적으로 19명의 조상에 얽힌 31가지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엮어 『세전서화첩』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김양진이 전라도 관찰사로서 임지를 떠나는 모습을 담은 「완영민읍수도」에는 그의 청렴한 관료로서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임기를 마친 김양진이 가마에 오르자, 만여 명의 고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전송 행렬을 이루었다. 망아지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이에 고을민들을 설득하며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서른여 명의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따라와 하인으로 삼아 줄 것을 간청하였다. 한참을 가다 보니, 김양진의 눈에 낯선 망아지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가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망아지가 없었는데 지금 갑자기 보이는구나, 이곳에서 태어난 것인가?”하고 물었고, 뒤따르는 하인이 그렇다고 하자,“그렇다면, 이는 전라감영의 재산인데, 내가 어찌 갖고 갈 수 있겠느냐! 끌고 가서 나무에 매어놓고 오너라”고 지시하니, 하인이 망아지를 끌고 가서 동문 바깥의 버드나무에 매어놓았다.
 

<「완영민읍수도」, 『세전서화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풍산김씨 근전문중>
 

 

이처럼 훌륭한 조상의 업적과 가르침을 대대손손 전하기 위해 김중휴는 선대의 행적과 유고를 모은 『석릉세고』를 편찬하기도 하며 집안의 학문을 계승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이 문중에서 발간된 문집과 유고집이 55여 종에 이르게 된다.


<『석릉세고』,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풍산김씨 근전문중>
 

 

 풍산김씨 문중사람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와 실천정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그 빛을 발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2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다. 대표적 인물로는 의열단으로 일본 왕궁 앞에서 폭탄을 던진 김지섭, 사회주의 이념을 갖고 줄기차게 투쟁한 김응섭,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역임한 김재봉을 비롯하여 3.1운동, 군자금 지원활동, 대중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의 업적과 기록이 오미광복운동기념공원에 남아 있다.

 


<오미광복운동기념공원>
 

 

이처럼 오미고택마을에는 오랜 시간 동안 충실하게 역사를 만들어 온 풍산김씨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 남아있어 짧은 글로 풀어내기에는 마을 구석구석 그리고 고택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녹음이 짙어가는 오미고택마을에 가벼운 둘레길 산책으로 힐링과 역사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나들이를 계획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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