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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 광산김씨 오천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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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 안동호가 멀리 보이는 곳 즈음에 아담한 산세를 따라 배치된 기와집들과 그 앞을 흐르는 물줄기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도산구곡의 시작점인 제1곡 운암곡과 어우러진 마을 전경을 지나쳐 도로변 마을 입구에는 ‘군자마을’과 ‘광산김씨 오천유적지’라고 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원래 오천리는 예안현 남쪽 7리쯤 되는 곳에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1970년대 안동댐을 준공하면서 수몰 위기에 처한 마을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와 새롭게 조성하게 되었다. 후조당을 비롯한 탁청정 종가와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침락정 등 스무 여 채의 고풍스러운 기와 고택이 자연과 조화롭게 배치되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군자마을 전경>

‘외내’라고도 불리는 오천마을은 농수 김효로가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광산김씨 예안파 문중이 20여 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1607년 안동부사로 부임하며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말한 이후 ‘오천리’라고 하는 행정지명 보다는 ‘군자리’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오천 군자마을 입구 표지석>

정구가 이렇게 말한 배경에는 ‘오천 7군자’라는 말이 전해지는데, 바로 입향조 김효로의 친손과 외손인 후조당 김부필, 읍청정 김부의, 산남 김부인, 양정당 김부신, 설월당 김부륜, 일휴당 금응협, 면진재 금응훈 등 일곱명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퇴계 이황의 제자이기도 했으며, 학문과 덕망이 높아 정구가 오천을 방문한 당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명문가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또한 퇴계 이황의 9세손 광뢰 이야순은 오천마을의 광산김씨 사람들을 두고,“가문을 빛나게 한 어질고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되었는데, 헤아려보면 운암공 김연과 탁청공 김유 이하 8촌과 9촌 친척들이 모두 스물다섯분이나 되니, 한 집안에서 이처럼 남들에게 성대하게 알려진 것으로는 세상에 겨를 가문이 없을 것이다” 라며 오천 25현도를 작성하기도 했다.

<「오천25현도」, 『광뢰집』, 소장: 한국국학진흥원/기탁: 광산김씨 후조당종가>

이처럼 군자의 집안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문중 사람들은 당대에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그 명망을 지키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입향조 김효로의 두 아들 운암 김연과 탁청정 김유는 가문의 터전을 닦은 인물로, 김연은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 진출하며 선정을 베풀어 이름을 남겼고, 김유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을 청빈한 군자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다. 이에 김유는 탁청정 정자에서 여러 선비들과 교유하며 수준 높은 접빈문화를 발달시켰고, 그 결과 121종의 음식 조리 및 관련 내용이 수록된 『수운잡방』을 집필하게 되었다.

<김유의 접빈문화가 깃든 탁청정 전경>

<탁청정 누마루에서 본 마을 정원 전경>

수운잡방은 할아버지 김유로부터 손자 김영에 이르기까지 3대가 계승하며 집필한 음식 조리서로서, 조선 전기의 음식문화를 알 수 있는 희귀본으로 가치가 높아 202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수운잡방, [보물],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광산김씨 설월당종가>

<수운잡방을 보존하며 계승하고 있는 설월당종택>

한편,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은 지식인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계암 김령의 「계암일록」을 비롯하여 근시재 김해와 그의 아들과 손자가 4대에 걸쳐 120여 년 간 쓴 일기는 탁청정을 비롯한 군자마을 곳곳에서 친우친지들과 교유하며 어울렸던 일상이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그 속에서 일과 중의 소소한 감상과 자기반성을 털어놓는 등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실천한 광산김씨 예안파 문중을 가풍과 기록에 대한 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광산김씨 예안파 문중에서 소장해 온 선조들의 일기,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광산김씨 후조당 종가>

또한 일기를 통해 당대 지식인들의 시선에서 본 사회적 이슈나 생생한 일상의 모습을 연구할 수 있어 자료로서 가치도 높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김해의 「향병일기」와 그의 아들 김광계의 「매원일기」에는 임진왜란을 비롯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의 국난에 대응하는 당시 지식인의 역할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해의 향병일기,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광산김씨 후조당종가>

<의병장 김해가 사용한 화살, 소장: 광산김씨 후조당종가>

이처럼 광산김씨 예안파문중은 조선시대 명문가로서 지역사회에서 귀감이 되는 선비문화를 지켜왔다. 그 흔적은 오천 군자마을의 집과 마을 길, 정자와 꽃과 나무 등등 곳곳에 남아 지금까지 잘 전해지고 있다. 기품있는 고택의 아름다움은 사진작가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한다. 이에 영화 관상, 미인도, 드라마 공주의 남자, 철인왕후, 환혼 등 영화나 드라마 시대물의 배경으로 군자마을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는 후조당 전경>

<후조당 입구 돌계단>

<후조당 사랑채>

오천 군자마을의 여러 고택과 마을을 둘러보며 여유로움도 즐길 수 있지만, 하룻밤을 지내면서 고택에서의 하루를 온전히 체험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추천한다. 달이 뜬 군자마을의 밤길 산책은 낮은 조명으로 고택과 옛 마을의 기품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숙박체험은 안동군자마을 홈페이지(www.gunjari.net/index.html) 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