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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칭송한 적선지가積善之家, 영천이씨 농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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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도산서원을 지나 청량산을 조금 못 미치는 곳에서 농암종택으로 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구불구불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에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시원하게 흘러 산수 절경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감상을 절로 느껴진다.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 숲의 싱그러운 향기와 하늘을 유유히 떠도는 구름과 바람, 새들의 날갯짓이 어우러진 경관이 이어지는 그 길 끝에 농암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가송천 건너에서 바라본 농암종택(분강촌) 일대>

농암 이현보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관료이자,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어 많은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외모는 특유의 크고 거무스름한 얼굴과 거칠 것 없는 당당함과 호방함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사헌부 시절 관직 생활을 함께한 동료들은 ‘소주도병燒酒陶甁’ 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마치 질그릇 병처럼 검고 투박하지만, 내면은 소주처럼 맑고 엄격하다는 의미가 담겨있어 그 인품을 짐작하게 한다.

<농암 이현보(71세 때)의 영정[보물],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영천이씨 농암종택>

이러한 성품으로 사간원 정언으로 재직할 당시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다가 안동으로 유배되었고, 중종반정 이후 사헌부 지평에 복직되어 밀양, 안동, 충주, 성주 등의 목사를 역임하고, 이후 동부승지, 부제학, 경상도 관찰사, 호조참판 등을 거쳐 명종 대에는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목민관으로서 관직 생활을 하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은 물론 임금으로부터 하사품을 내려받을 만큼 훌륭한 인품을 지닌 관료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가장 큰 일로 여기고 있었기에, 사후에 효절공孝節公이라는 시호를 받기도 했다.

<농암 이현보에게 효절공 시호를 내린 교지[보물],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영천이씨 농암종택>

이와 관련하여 ‘적선積善’ 목판이 전해진다. 이현보의 아들 이숙량이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인사를 올리는 자리에서 선조는 “너의 집안은 적선지가積善之家가 아니냐?”며 그 자리에서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때 선조가 말한 ‘적선’은 이현보의 지극한 효성과 경로 정신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목판으로 새겨 현재 농암종택의 사랑채에 걸어두고 있다.

<농암종택 사랑채 전경과 선조의 글을 새긴 적선 목판 1, 2>

종택을 나와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이현보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분강서원’이 자리하고 있고, 계속 이어지는 길 끝에는 이현보의 효심을 보여주는 장소로 ‘애일당’이 화려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애일愛日’이라는 뜻은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으로, 부모님을 향한 효심이 가득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현보는 46세에 애일당을 짓고 명절마다 때때옷 차림으로 재롱을 부리며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농암종택의 끝자락에 위치한 애일당과 강각(정자)의 전경>

앞에서 선조가 이현보의 아들에게 ‘적선지가’라는 글을 써서 하사한 데에는 비단 부모님에 대한 효도뿐만 아니라, 고을의 노인들을 모두 어버이처럼 함께 공경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 모습은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의 「화산양로연도花山養老宴圖」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현보가 안동부사를 역임할 당시 중양절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비롯한 안동의 노인들을 위해 양로 잔치를 마련하였는데, 이 잔치에 80세가 넘은 수백명의 노인들이 남녀 귀천 없이 모두 초대되었다고 한다.

<「화산양로연도」-『애일당구경첩』[보물],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영천이씨 농암종택)>

歲稔時淸九月天
公堂開宴會高年
霜髥雪鬢扶携處
赤葉黃花爛熳邊
位設尊卑酬酢遍
廳分內外管絃連
樽前綵戲人休怪
太守雙親亦在筵

풍년들고 계절도 청명한 구월에
관청에서 노인들 모아 잔치를 열었네
허연 수염을 지닌 이들 부축하는 곳
주변에 붉은 잎과 노란 꽃이 현란하여라
지위에 따라 자리가 정해지고 두루 술을 권하니,
청사 안팎에서 악기 소리 그치지 않는구나
술동이 앞에서 때때옷 입은 일 이상하게 여기지 말게나
내 부모님도 이 자리에 계신다네

- 화산양로연에서 이현보가 지은 시

이처럼 50이 넘은 나이에 한 고을의 수령이라는 지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돌맞이 아이가 입는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이현보만의 효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이는 곧 효도라고 하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가까이에서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으로, 연로한 어른들이 잠시나마 자신의 나이를 잊고 즐거워하시는 시간을 드리는 것이었다. 농암종택 일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현보의 따뜻한 효심과 청백하고 곧은 정신이 깃든 유적들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농암종택 사랑채 앞에 위치한 긍구당.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