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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그 맛이 짠줄 아는가, 침류정(枕流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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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오.”
“아니, 팔만대장경도 다 읽지 않고 어떻게 스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자네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그 맛이 짠 줄 아는가?

침류정을 답사하기 위해 풍산읍 하리리로 가면서 문득 서암 큰 스님(1914~2003)과의 인연이 스쳐 지나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님께서는 열반에 들기 전 봉암사에 머물러 계셨다. 봉암사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산문을 굳게 닫은 터라 스님을 뵙기가 쉽지 않을 때였는데 어렵게 연결되어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에 두고 만나 뵙게 되었다. 그날 서암 큰 스님과 함께 ‘침류교’를 건너며 당돌하게도 스님에게 팔만대장경을 다 읽으셨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스님의 답은 자네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그 맛이 짠 줄 아는가였다. 스님의 명쾌한 답에 머쓱해진 나는 또다시 ‘침류교’에 담긴 의미를 물었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스님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침류정이 자리 잡은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우릉골), 맨 뒤 언덕 위에 우뚝한 건물이 침류정이다. 앞에 있는 건물은 사당인 존경사이고, 비석 오른편은 난졸재 이산두 선생의 어필영정각이다.

문경에 있는 희양산 봉암사로 들려면 ‘침류교(枕流僑)’를 건너야 한다. 서암 스님은 시자들에게 ‘침류’에 담긴 뜻, “흐르는 물을 베고 있다는, 그 뜻을 알아야 한다, 알겠느냐?”고 종종 말씀하셨다고 한다.

본래 침류는 수석침류(漱石枕流)에서 비롯된 말이다. 뜻을 풀어보면, “수(漱)는 양치질할 수 자이며, 석(石)은 돌 석 자이고, 침(枕)은 베개 침 자이며, 류(流)는 흐를 류 자”를 쓴다. 직역하면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아 베고 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물로 양치질하고 돌을 베고 자는”게 맞는데 뒤집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이 말은 스스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말하자면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린다”라는 의미이다.

봉암사로 들기 위해서는 침류교를 건너야 한다.

이 말은 진(晋)나라 사람 손초(孫楚)와 친구 왕제(王濟) 사이의 고사에서 생겼다. 진나라 때는 신선 사상이 크게 성행하여 단금술(丹金術)이 유행하면서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신선의 도를 닦는 이들이 많았다. 손초도 산수에 은거하며 신선의 도를 닦고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수석침류(漱石枕流)하려고 하오.”하였다. 이 말을 들은 친구 왕제가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 말을 틀리게 하는가? 수석침류가 아니라 수류침석하려는 것이 아니오?”하였다. 그러나 손초는 자신의 말이 틀린 것을 알면서도 친구에게 자기가 말을 잘못한 것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여 억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으려 함이오. 흐르는 물로 베게 한다는 말은 옛날 영수 가에 살며 임금 노릇하라는 말을 듣고 자기의 깨끗한 귀를 더럽혔다며 귀를 씻은 허유와 소부같이 하려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어찌 손초가 자기 실수를 몰랐겠는가? 그는 알면서도 억지소리를 한 것이다.

2003년 봄 서암 스님의 다비식이 있던 날, 의식을 안내하는 리플렛에는 서암 스님의 온화한 모습이 담겨 있고, 선문답과 같은 글이 소개되어 있었다.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사람들이 열반송을 물으면 무어라 할까요?”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한평생 사시고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
“할 말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달리 할 말이 없다. 정히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나는 아직 스님께서 말씀하신 침류의 의미를 모른다. 어찌 알겠는가.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자네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그 맛이 짠 줄 아는가?”며 반문하면서 잔잔하게 미소 지으신 스님의 크신 뜻을 조금이나마 알듯도 하다.

왼편은 정자의 주인인 양정공 이화 선생의 사적비이고,
오른편은 난졸재 이산두 선생의 사적비이다.

이번 호에 답사하는 침류정(枕流亭)은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 있다. 안동에서 풍산읍 하리리 풍산읍 119안전센터 옆 농로를 따라가다 좌측 산에 있는 일성당을 지나 산을 오르면 어필 영정각이 있고 뒤편 능선에 정자가 남향으로 앉아 있다. 침류정은 조선시대 병조판서를 지낸 양정공(襄靖公) 이화(李樺 1391~1459)가 만년에 향리인 풍산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로 유래하나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침류정은 1899년 원래의 장소인 소산리 사지동에서 풍산 하리 하지산 기슭으로 옮기었다. 그 후 1925년 난졸재 종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다시 옮겨 세웠다. 후손 이학로가 지은 중수기에 의하면 '정자를 지은 지 500여 년이 지나 정자는 비고, 풀만 무성하여서 다시 옮겨 세웠다. 옮겨 세운 장소가 좁아 다시 옮겨 세우면서 중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규모는 4칸 정자로 대청과 협실 두 개를 가지고 있다.

이학로의 중수기에 의하면 침류정은 원래 소산 정산 아래 설못 위에 있었는데, 논어의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仁者樂山, 智者樂水].”에서 취한 것이라 한다. 또 이화의 시에 “흰 살쩍 늘그막을 근심하게 하나, 누렇게 익은 벼 풍년을 즐기게 하네. 강호에는 아무 일 없으니, 부끄러이 산림에 묻힌 늙은이 되었네[鬢白憂時晼, 稻黃樂世豊, 江湖無一事, 愧作枕泉翁].”라 하였다.

정자는 1899년 고종 광무 연간에 하지산 기슭으로 옮기었다가 장소가 비좁아서 1925년 현재 정자가 있는 장소로 옮겨 세웠는데, 단순한 이건이 아니라 새로 짓다시피 한 것이었다. 장소는 이화의 자손인 난졸재 종가와 난졸재 어필영정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정했다.

침류정

이학로의 중수기는 옮겨 세워진 침류정이 자리한 풍광을, 학가산과 봉대가 서북쪽에 있고, 너른 들과 큰 내가 울타리처럼 서남을 가로지르고, 앞에는 산이 둘러쌓고 강이 띠를 두르고 있는 선경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낙동강의 흐름은 멀리 바라보여서 마치 태극도의 흑백이 서로 뿌리가 되는 것 같다고 묘사하였다. 침류정 앞면에 나무판에 태극도의 흑백을 그려 붙여 놓은 것은 이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풍광을 형상해 놓은 것이리라.

당호인 침류는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라는 뜻을 잘못 해석한 중국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원래는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돌로 베개를 삼는다’라는 뜻으로 자연 속에 유연자적하는 군자의 기상을 뜻한다. 또 침류정은 안동 지역의 독립운동과 관련 있는 건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청 상부에 피신을 위한 우물천장과 독립 정신의 표상으로 장식한 대청 정면 살창과 태극 문양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느껴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풍산읍 하리에 정착한 전의 이씨(全義李氏)는 이도(李棹)를 시조로 하고 판서를 지낸 이웅이 조선 초 풍산으로 우거한 뒤 후손들이 하리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시조 이도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원래 공주 출신인데 왕건(王建)을 도와 후백제 견훤(甄萱)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공신록에 오르고 전산후(全山侯, 전산은 전의의 옛 지명)에 책봉되었다. 그 후 전산으로 이거하여 정착하고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전의(全義)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이도의 후예 이웅은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전농정(典農正)을 지냈으며 벼슬을 버리고 영남으로 내려와 풍산현 사지(笥池, 현 소산리. 속칭 설못)에 우거하였고, 자손이 뒤에 하리리로 옮겨 정착하였다.

1608년에 편찬된 향토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이웅은 전의 사람이다. 고려 태사 이도의 후예로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아들 이화는 무용이 있어 벼슬이 판중추에 이르렀다.” 또 이화의 동생 이강(李橿)의 처 의성김씨(義城金氏)의 정려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대청 상부에 피신을 위한 우물천장과 독립 정신의 표상으로 장식한 대청 정면 살창과 태극
문양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느껴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정자의 주인인 이화는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자(字)는 경실(景實), 호(號)는 야소헌(埜巢軒)이다. 전의 이씨 안동입향조(安東入鄕祖)인 웅(雄)의 아들이다. 142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무관으로 출사했으나, 1422년 문과에 급제하고 오랑캐를 토벌한 공으로 첨지 중추원사에 등용되었으며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고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만년에 향리인 안동 풍산으로 돌아와 여러 차례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고, 정산(井山) 아래 큰 들이 있는 낙동강변 동쪽에 야소헌을 서쪽에 침류정을 짓고 유유자적하면서 지냈다. 마을 앞에 큰 연못을 파 사지(笥池:설못)라 이름 붙였으며 이에 따라 마을 이름도 사지리라 칭해졌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침류정 아래에 있는 난졸재 종가는 이화의 후손인 이산두(李山斗, 1680~1772)의 종가이다. 선생의 호는 난졸재(懶拙齋)이고 자는 자앙(子仰)이다. 1714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32년에 유생으로 강경거수(講經居首)가 되어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혜를 받았다. 이듬해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758년에 판결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1767년에는 참판에서 지중추부사로 추천받아 이듬해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종택은 사당인 지산 사우, 이화가 후진을 양성하던 침류정(枕流亭)이 있고, 이산두의 영정을 봉안한 어필영정각(御筆影幀閣)이 있다.

침류정에서 바라본 전경

침류정 편액

침류정 배면

침류정 내부

난졸재 이산두 선생 어필영정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