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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한 야외민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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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민속박물관 세 번째 이야기는 민속촌 길에 놓인 수변공원 옆 가마터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이에 예움터 마을과 동산서원에서 머물던 걸음은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온다. 이때 걸음은 보월루 아래 펼쳐진 민속촌 길을 따라 경사진 내리막을 걷는다.

초가들이 즐비한 비탈진 길을 내려가다 보면 정면으로 인근 안동호가 아담한 자태를 뿜어낸다. 멋진 전경을 놓칠세라 가파른 민속촌 길을 내려가던 세 명의 젊은이가 안동호를 배경으로 팔을 한껏 들어 올린 채 폴짝 뛰어오른다. 순간 포착을 놓칠세라 한 친구는 아름다운 주변 배경과 함께 그들의 생기발랄한 멋진 모습을 카메라 렌즈 속에 담아낸다. 옛집 곁을 지나치는 젊은이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의 어우러짐이 지속적인 삶의 공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수변공원에 이른 걸음은 초가지붕을 걸친 기와 가마터 앞에 이르게 한다. 갸름한 터 한쪽의 작은 화덕 위로 뚫린 두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심상찮다. 짚으로 엮은 지붕을 이고 있는 기와 가마터가 무슨 유물 발굴의 현장처럼 와 닿는다. 낙동강 택지개발 공사 때 정하동에 자리했던 기와 가마터다.

오름식 가마며 둥근 돔 형태의 가마 지붕이 가라앉은 형태이며 기와 벽돌 또는 질그릇 등을 구워내던 구덩이 시설이라지만, 쉽게 머리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모형의 그림으로나마 안내판에 그려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처음 접하는 이들은 자그마한 화덕에서 어떻게 기와가 구워졌는지 선 듯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 법하다. 화덕 일부분이 아닌 기와를 넣고 굽는 전체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잘될 것이라는 생각도 가져본다.

그래도 숯불 화덕 깊은 곳에서 빵을 구워내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가 좀 될 듯도 하다. 아무튼,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때 관청이나 사찰의 기와를 생산했을 법한 기와 가마터가 왠지 작은 요람 혹은 부엌 아궁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가마터 왼쪽 바로 위에 연자방아가 할 일을 영원히 잊었다는 듯 무심한 세월만 지새우고 있다. 커다란 둥근 돌판 위에 옆으로 세운 돌을 세우고 소나 말이 끌도록 만든 방아다. 이는 디딜방아보다 많은 곡식을 한꺼번에 찧을 때 사용된다. 아마도 사극에서 더러 봤기 때문일까, 언젠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둥근 돌판에 곡식을 넣고 소나 말이 연자방아를 힘겹게 돌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연자방아 위쪽으로 토담을 두르고 있는 아기자기한 기와집이 발길을 잡아끈다. 도산면 의촌리에 있었던 남반 이만형 선생의 남반고택이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 옮겨진 건물로 전방의 사랑채가 돌출되어 ‘巳’ 자형을 갖추고 있는 고가다. 대개 사대부의 집들은 ‘□’자형인 것에 비해 좀 색다른 구조다. 당시의 생활양식을 헤아려보게 하는 집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대문채가 소박한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반가의 집으로는 좀 특이하다. 보통 초가는 평민의 집, 고택은 사대부의 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은 살지 않지만, 여러 기능을 가진 오밀조밀한 집안의 크고 작은 공간들이 여전히 그 옛날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초가와 기와로 이루어진 반가의 집인 소박한 남반고택

고택과 초가를 둘러보면 반가의 집과 평민의 집 구조가 확연히 다르다. 보통 반가의 집은 ‘□’자형으로 실용적이며 효율적인 공간으로 이루어져 모든 동선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 평민의 집은 ‘—’자형, ‘ㄱ’자형, H형, ‘ㄷ자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어느 산간 지역에 있느냐 혹은 내륙의 평지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집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

특히 평민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기에 필요한 공간 구조 확보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집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집의 구조는 축소되거나 확대되어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보통 사대부의 집은 일괄적으로 거의 비슷한 구조의 실용적인‘□’자형 집의 형태를 가졌다면 평민의 집은 제각각의 구조와 형태를 가졌음을 볼 수 있다.

와룡면 가류동에서 옮겨온 박운숙 초가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집 살림집으로 경북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집으로 어렸을 때 곧잘 보았던 집의 형태다. 박운숙 초가는 본채와 별채로 구분되어 있지만, 조금 위에 자리한 박원숙 초가 겹집은 본채, 대문채, 고방채로 이루어져 있다.

박원숙 초가 겹집은 당시 초가로서는 제법 규모가 크게 지어졌다. ‘ㄷ’ 자형의 집 구조가 나름 공간 분리와 효율성을 가져다준다. 집의 구조가 여러 살림살이 역할과 구분을 가져다주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본채와 대문채, 고방채가 당시 민가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나름 공간 분리와 효율성을 갖춘‘ㄷ’자형 박원숙 초가 겹집

대개 토담집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집으로 두꺼운 흙벽과 지붕이 추위와 더위에 유용하도록 지어졌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에 옮겨진 사월동 초가 토담집은 ‘—’자형으로 외양간, 부엌, 안방, 마루방, 건넌방의 구조로 되어 있다.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자형 집은 서민들이 가장 많이 기거했던 일반적인 집이다.

단순하고 평범한‘—’자형 사월동 초가 토담집

‘H’형의 독특한 양식을 가진 의촌동 초가 도투마리 집

가운데 부엌이 있고 방이 양옆으로 되어 있는 의촌동 초가 도투마리 집은 안동 민가의 독특한 양식이다. 도투마리는 ‘H’형의 널빤지를 말하는데 초가의 구조가 이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투마리 부엌은 앞뒤로 문이 나 있어 앞의 쌍여닫이문은 대문 구실을 하고 뒷문은 뒤의 장독대로 통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게 보인다. 아마도 주인이 필요에 따라 편리하게 드나들기 위해 만든 절약적인 동선 확보를 보여주는 생활 구조라 하겠다.

이쯤에서 다시금 야외민속촌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건물에 대해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여본다. 1971년 낙동강 댐 건설을 시작하면서 주로 와룡면, 도산면, 예안면, 임동면 등에 흩어져 있던 전통문화와 역사가 물에 수장될 위기에 직면했다. 그래서 선조들의 생활 공간이었던 초가나 기와를 비롯하여 각종 문화재를 안동민속촌으로 옮기게 되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예로 선성현객사도 빼놓을 수 없다. 지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객사로 예안 현감 김성유 선생이 고쳐 지은 건물(숙종 38년, 1712년)로 알려졌다. 원래 예안면 서부리에 있던 선성현객사는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주로 외국 사신이나 관료들을 대접하고 묵게 했던 곳이다. 현재로 말하면 호텔 정도의 건물이랄까?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29호인 선성현객사는 관청 건물로 장대한 붉은 기둥들이 늘어선 ‘—’ 자형의 건물이 우아하다. 용의 그림이 그려진 대들보나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단청이 야단스럽거나 화려하지 않고 은근하다. 전통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 가지 공포 중 이곳의 공포는 익공 양식으로 멋스러운 건물의 운치를 더해준다. 소소한 미가 우러나오는 단청과 함께 기둥 사이마다 일렬로 늘어선 초 익공 공포는 높낮이가 다른 세 개의 지붕을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전면 11칸의 선성현객사는 중앙에 5칸짜리 정당을 가졌으며 양쪽 정면으로 각각 3칸, 총 6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중앙의 정당은 초하루 혹은 보름에 전폐(임금을 상징하는 殿 자를 새긴 나무패)를 모시고 궁궐을 향해 절을 올렸던 장소로 양쪽의 건물들과는 그 이용도가 달랐다. 중앙 양쪽의 건물은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한편, 정당의 지붕은 양쪽의 지붕보다 조금 높게 차별화를 두었다. 또한, 양쪽으로 대청과 툇마루가 있어 다방면으로 활용도가 좋다.

보통 객사의 이미지는 큰 기둥이 일렬로 서 있는 누각인 커다란 건물로 인식된다. 그도 그럴 것이, 객관(客館)은 공적인 공간으로 손님을 모시거나 숙박에 이용되었기에 클 수밖에 없었을 줄로 안다. 한 고을을 대표했을 법한 객관은 단순히 숙소로만 이용되지 않았다. 중앙의 벼슬아치들이 지방으로 내려와 공문을 논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용도로도 쓰였다. 여기에는 나라와 지방의 살림살이를 비롯하여 정치, 문화 등 다양한 것들이 다루어졌으리라. 특히 한 고을의 규정을 제정하는데 다방면으로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객사는 고려, 조선 시대 때 설치한 관사로 고을에서 가장 큰 건물에 속하며, 그 어떤 시설보다 서열이 가장 높았음을 알 수 있다.

28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팔작지붕의 수려한 선성현객사가 안동호를 앞에 두고 있다. 물론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키 큰 소나무들이 시야를 가리지만 언 듯 언 듯 나무들 사이로 월영교를 걸친 아담한 안동호가 멋진 전경을 보여준다. 아늑한 숲속에 안긴 착각에 빠진다. 마루에 앉아 은은하게 다가오는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키며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선성현객사 옆 바로 밑의 月映臺 라는 해서체가 단아하다. 큰 암석 덩어리 하나를 뜯어내어 글자를 새겨 놓은 월영대다. ‘달이 비치는 대(臺)’란 뜻을 가진 세 개의 글자로 암석에 쓰인 글씨다. 암석은 긴 암벽을 다듬어 새겨 넣은 것으로 월계 권공 선생이 시를 읊조린 것으로 알려진다. 후에 세월이 그 자취를 지울 것 같아, 권공 선생의 종질인 병한 선생이 대를 쌓고, 돌에 대명을 썼다고 한다.

유형문화유산인 월영대는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4년 월곡면 사월리에서 옮겨왔다. 때로는 인적이 드문 산 능선에 홀로 이름 그대로 밤이면 달이 숲속을 헤치고 찾아들어 월영대 주변에서 한동안 노닐다 떠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야밤에 아름다운 경치를 밝히는 달빛은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선비의 정취를 한껏 달구며 풍류에 젖게 만들었을 줄로 안다. 하지만 달은 행복한 이가 찾기보다 마음이 허하거나 혼자만의 심상에 취한 이에게 더 자주 찾아 들 법하다.

세상 어느 곳이든 찾아드는 달빛은 특별히 달을 쫓아 상념에 잠기는 이에게는 좀 더 자주 찾아들지 않았을까 싶다. 때로는 다양한 감정에 휩싸여 번뇌에 허덕일 경우가 있다. 특히 어떤 아픔이나 슬픔 혹은 그리움, 추억들을 잊지 못해 홀로 달을 쳐다보며 서성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은은한 달빛은 무언의 대화를 걸어오며 포근한 마음을 어르고 달래준다. 가끔 심란한 마음을 다독이거나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달의 둥근 얼굴은 마치 만다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사위는 은근한 정겨움의 정취로 물들고 호젓한 마음은 언제나 달빛에 잠겨 들게 할 줄로 안다.

적적한 밤에 찾아든 달빛이 세상 골고루 파고들어 어둠을 밝힌다. 소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월영대에 앉아 머물 때쯤이면 안동호에 걸쳐진 월영교 아래에 스며든 달빛은 미풍에 일렁인다. 무심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은은한 밤의 빛이 유유자적한 삶의 정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달빛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환희의 애정 덩어리로 늘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절대로 가지거나 만질 수 없기에 그 동경은 영원하다. 달빛은 어두운 밤을 어루만져주는 온정의 정겨움은 아닐까 싶다.

월영대에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이내 석빙고를 만난다. 예로부터 낙동강에는 은어가 많이 잡혔다. 민물에 사는 물고기로 은빛 색깔을 가졌으며 매끈한 몸체를 가진 은어는 신선한 향기가 절로 우러나오는 민물고기로 그 맛이 아주 연하고 담백하다. 해서 일찍이 은어를 임금의 밥상에 올렸다고 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임금님께 은어를 진상하기 위해 특별한 보관 방법이 요구되었다. 얼음을 넣어 두기 위해 돌로 쌓은 창고가 그것이다. 이름 그대로 석빙실 혹은 석빙고(石氷庫)다.

사실 입구의 표지석과 화강암이 굳건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잔디로 덮여 있는 불룩한 형체만 봤다면 이는 분명 고분으로 다가왔다. 언 듯 보기에 따라 동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내부를 훔쳐보며 무엇으로 어떻게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의문을 가져보았다.

돌로 지어진 얼음 저장 창고인 안동 석빙고는 댐 건설로 인해 1976년 도산면 서부리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왔다. 보물 제305호¹⁾ 석빙고는 조선 후기 석조물로 이매신 현감이 1737~1740년 영조 때 축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매년 자비를 털어 석빙고를 쌓거나 수리하는 것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 이매신 현감의 청렴함과 강인한 의지를 보는 듯하다.

늘 정면 문이 잠겨 있는 석빙고는 좀처럼 그 내부를 둘러볼 수 없기에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에 강의 얼음을 절단하여 석빙고에 채운 후 다음 해 여름까지 물건들을 보관했다는 내부가 볼 때마다 궁금증을 불러오지만, 매번 정면 문의 창살 사이로 약간의 헹한 바닥만 보일 뿐이었다. 당시에 냉장고 역할을 했을 석빙고가 나름 유용하게 쓰였음을 느끼려 애를 써본다. 얼음 저장고의 내부 바닥이 평면이 아닌 살짝 골이 진 높낮이가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얼음이 녹으면 바닥 낮은 곳으로 물이 빠져야 하니까.

1) 『예안읍지(禮安邑誌)』

석빙고 천정의 세 개의 환기 구멍

잔디가 수북한 저장고 위에 환기 구멍 세 개가 보인다. 즉 내부에서 발생하는 습기나 온도 조절을 위해 천장에 숨구멍을 낸 것이리라. 공기가 흐르지 않는 밀폐된 공간은 세균 덩어리인 곰팡이가 득실거릴 테니까. 모든 공간에는 환기를 위한 숨구멍이 필요하다. 공기 정화는 적정 온도를 가져와 신선한 생명력을 유지 지속시켜 주니까. 이렇게 안동시립박물관 주변 야외박물관의 소중한 각종 문화유산에 젖어 들며 지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석빙고에서 내려다본 멋스러운 월영교가 어느덧 가을에 물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