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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 살아있는 예움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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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가 즐비한 야외민속촌은 옛 멋이 깃든 정감 어린 길이다. 문화관광 단지 방향의 성곡동 길을 따라 초가가 놓인 오르막을 거닌다. 여전히 야외 민속촌길의 연장 길로 전편에 이어 야외민속박물관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잇는다. 주변 우거진 숲이 새들의 지저귐으로 청량함을 더해준다. 가뿐한 마음에 신선한 산림의 싱그러움도 잠시, 걸음은 이내 보월루(步月樓)에 닿는다.

멋스러운 모습을 가진 보월루는 이름 그대로 달 위를 걷는 누각으로 한때 드라마 세트장으로 쓰였다. 2000년~2002년까지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의 태조 왕건 세트장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또한, 2011년부터 실경 뮤지컬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안동 몽진 홍언박과 여랑의 애틋한 사랑, 안어대동(安於大東) 민중의 삶을 조명한 왕의 나라를 비롯하여 2022년 두 번째 왕의 나라 ‘삼태사와 병산 전투’가 3D 비디오 맵핑 기술로 안동민속촌 성곽 특설 무대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태조 왕건 세트장으로 쓰일 때는 현재와 다르게 건물들이 배치되었다. 드라마를 찍을 때만 해도 보월루를 지나면 서민들의 거주지로 초가가 즐비했다. 드라마를 찍기 위해 마련됐던 당시의 많은 초가는 어느 순간 없어지고 그 자리에 현재는 인성 함양을 위한‘예움터 마을’이 자리했다. 즉 보월루만 남기고 나머지 세트장의 크고 작은 건물과 초가 마을은 사라졌다.

성곽과 문루를 지나 키가 큰 소나무 사이로 쭉 놓인 돌길을 거닌다. 차단벽처럼 느껴지는 돌담 벽에 붙어있는‘바람 품은 돌담’이란 철판 글귀가 녹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허튼 층 쌓기인 돌담은 풍진세상의 비바람을 안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가졌을 법하다. 바람 품은 돌담 곁의 호젓한 육각형 정자와 연못이 잠시 쉬었다 가게 한다. 편안하게 와 닿는 한적한 공간의 아기자기한 경관에 취하다 보니 싱그러운 녹음 속 새들의 지저귐이 정적을 깨뜨린다.

‘구름에 숙박객 공간’이란 안내판이 예움터 마을 입구 왼쪽의 호젓한 길 중앙에 놓여 있다. 시골길을 거닐며 작은 마을을 둘러보게 하는 곳이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물에 잠길 법한 고택들을 구름에 리조트 자리로 옮겨온 것들이다. 전통 고택은 추억과 향수를 불러내며 선인들의 생활을 가늠하게 한다. 누구든 전통 숙박 체험을 원한다면 머물고 싶은 고택을 선택할 수 있다. 8채의 고택으로는 계남고택, 팔회당재사, 칠곡고택, 서운정, 우향각, 감동재사, 청옹정, 박산정이 그것이다. 고택들의 이름들이 나름의 뜻을 가지고 숙박객 공간으로 세월을 건너고 있다.

정겨운 골목길을 누비는 착각에 빠지며 한 집 한 집 들여다보는 재미가 좋다. 고택들을 다 헤아릴 수는 없기에 눈에 자꾸 밟히는 몇 개의 고택만 기웃거려 본다. 제법 큰 규모를 가졌을 법한 □자 형의 계남고택과 팔회당재사, 칠곡고택이 그 내부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숙박객을 위한 시설로 쓰이기에 아무나 함부로 들락날락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해서 조붓한 길을 따라 거닐면서 한차례 넘어보다 지나칠 수밖에 없다.

토계동 계남고택은 퇴계 이황 선생 8세손 집으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 남쪽에 있었다 하여 계남이라 부른다. 때로는 이름에서 고택이 처음 있었던 지명을 유추하게 만드는 듯도 하다. 울타리가 없는 나지막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아담한 고택 어디선가 행랑채의 어멈이 금방이라도 나타나 손님을 맞아줄 것 같은 집이다.

여러 고택 중 왼쪽의 우향사, 오른쪽 우향각 집은 좀 특별한 뜻을 가졌다. 삼국유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계’(契)는 두 사람 이상 결성한 모임으로 여기에는 상부상조와 경제적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목 도모를 위한 협동조직의 성격을 갖는다. 또한, 서로에게 덕업을 권하고 풍화를 밝히는데 그 의미를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향계(1478)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계회(契會)로 본다. 당시 우향계를 창립했던 13명의 위패는 매년 봄, 춘향제가 열려 받들어 모셔지고 있다.


우향사		우향각

마루 둘레에 난간을 걸친 우향각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단아한 팔작지붕을 가졌다. 우향각(友鄕閣)은 측면에는 우향계축과 부우향계가(附友鄕契歌)라는 두 개의 비문이 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협업하여 살아가는 취지에서 계를 결성하고 유지했음을 말해주는가 하면 지역의 우정과 친목을 위한 계의 활동에 대해 노래로 읊은 것이리라.

구름에 고택 리조트를 한 바퀴 돌아서 나오자 이내 ‘예움터 마을’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선 듯 와 닿기에 예(禮)가 깃든 마을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둘러보면 역사와 유교 문화 자원이 가장 잘 보존된 예움터 마을을 근간으로 인성 교육과 전통문화 체험장으로 지역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 목적으로 마련된 마을임을 알게 한다.

새롭게 안 사실은 예움터 마을이 보월루 앞 대형주차장에서 고택 리조트 및 호연정에 이르기까지 꽤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건물이 기와로 지어진 고택이라 예스러움과 멋스러움이 있다. 전통문화를 상기시키고 체험에 젖게 하는 예움터 마을이 친근하게 와 닿는다.

‘예움터 마을’이라 새긴 표지석 뒤로 수령을 알 수 없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동목(洞木)처럼 서 있다. 그 옆에는 구름에 돌 파티나 야외 결혼식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곳임을 알려주는 작은 현수막이 광고효과를 주느라 키 큰 가로등에 매달려 있다. 이를 말해주듯 예스러운 이곳에서 돌 파티나 야외결혼식이 심심찮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움터 마을은 크게 한옥 라운지, 북카페, 천자문 마당, 구인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 듯 보기에 모두 콘크리트 한옥으로 지어진 집 같다. ㄷ자 모양의 한옥 라운지는 바로 앞의 소나무 팔에 걸쳐져 멋스러운 운치를 자아낸다. 입구에 작은 Gurume 간판은 K-food Restaurant임을 알려준다. ‘구름에 고택 리조트’에서 숙박한 이들이라면 식사는 응당 한옥 라운지나 전통 리조트 구름에서 하는 것이 편리하다. 우리의 전통 한식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성에 따라 양식을 선택해서 배를 채울 수도 있다.

각종 차나 음료수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북카페다. 이곳의 북카페는 커피를 비롯하여 정감있게 다가오는 전통차도 마련되어 있다. 아늑한 분위기와 함께 차의 은은하고 향기로운 냄새는 수수하고 감미로운 맛을 더해준다. 북카페에서 자유롭게 때로는 작은 모임을 소소하게 가지며 여유의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아래 계단에서 올려다본 위쪽의 삼문(三門)인 숭의문(崇義門)은 말 그대로 높게 우러러보인다. 계단을 오르며 숭의문을 넘어서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공연히 숭고한 의로움이 깃들어 있을 법한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시민들의 공간으로 휴식과 여유의 시간을 즐길 법한 곳이었다. 왼쪽은 구름에 온 그림책 공간 ON과 오른쪽에는 구름에 카페 396이 양쪽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구름에 온 그림책 공간인 ON 앞에서는 가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린다. 이날은 전통 의상인 개량 한복을 곱게 입은 배우들이 악기 연주와 가곡을 부르고 있었다. 특히 전통 판소리나 대금 연주는 나이 지긋한 이들에게 심금을 울려준다. 396 구름에 카페 손님들이 야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독특한 우리 전통 음악에 취한 듯 보였다.

특히 소수의 외국인이 우리의 전통 악기와 소리가 신기하고 흥미로운지 연주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외국인들은 타국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 어린 마음을 가진 듯했다. 가끔 타인의 문화에 호기심을 가지며 색다른 체험에 젖어 드는 것도 좋으리라.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국악이 무르익어갈 즈음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각종 기념품 진열대가 아기자기한 기염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개의 작은 상품들이 판매된다. 각종 소품을 비롯하여 아기자기한 모양의 전통 물건들이 그늘막 아래 놓여서 손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숭의문의 공간을 넘어서자, 위에 조금 가파른 계단이 속히 올라와 보라고 이끈다. 허겁지겁 계단을 오르면 한문을 바닥 가득히 새긴 천자문 마당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게 한다. 한 자 한 자 밟으며 뜻, 음을 읊다가도 때로는 알 듯 말 듯 애매한 한자 앞에서 서성인다.

천자문 마당 정면 위쪽에 ㄷ자 모양의 기와집인 구인당(求仁當)이 멋스럽게 펼쳐져 있다. 현판 글씨 구인당이 ‘인을 구하는 집’이라 말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모든 덕의 기초가 인(仁)이 아닌가 싶다. 해서 인은 삶의 기초이자 이상이다. 좋은 의미의 이름을 가진 건물들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교육적인 정신 순화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꼼꼼한 정밀함으로 다가오는 사분합 문들이 고풍스러운 옛 멋을 물씬 자아낸다. 품새가 단아하고 우아한 진중한 건물이다. 굳게 닫힌 문이 특별한 공간으로 여겨지게 한다. 특별한 행사 혹은 특정인의 모임이나 회의, 강연, 교육 등 다방면으로 의미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이리라. 한마디로 유교 교육의 장으로 쓰이기에 적합한 건물이다. 공연히 그 실내 구조가 궁금하다.

중심 건물인 구인당 좌우로 일신재와 명덕재가 자리하고 있다. 명덕재는 사서 중 대학의 첫 구절 맑고 밝은 덕행은 사람의 천성이란 뜻으로 명덕(明德)에서 따온 말이다. 일신재 또한 대학에서 나오는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뜻의 일신(日新)에서 따온 글이리라. 나름의 뜻을 가진 건물들이 일반적인 서원의 구조와 같다. 크게 ㄷ자 모양으로 천자문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구인당과 명덕재, 일신재는 유교적인 삶의 체험장은 아닐까 싶다.

예움터 마을을 지나 안동 문화 관광단지 방향의 길목에 동산서원(東山書院)이란 사각 표지석이 오른쪽으로 난 한적한 길로 이끈다. 10m 남짓 걸었을까, 이내 소박한 한 고택과 마주한다. 다수의 고택 이름이나 내력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도 많음을 느끼곤 한다.

안동시 문화유산 제74호 지정된 애련정(愛蓮亭) 혹은 애련당이라 불리는 고택이다. 원래 안동시 옥정동에 있던 것을 2004년 민속촌길인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건물의 주인은 조선 중기 학자였던 송재 이우 선생이다. 퇴계의 학문은 숙부인 송재 이우 선생의 영향이 컸다. 학문에 뛰어났던 송재 선생은 퇴계 선생의 숙부로 선생의 아들과 온계의 퇴계 조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는 것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작은 사각 정자 호연정 뒤편 송재 이우 선생의 애련정(애련당)

아담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처마를 받치고 있는 네 개의 사각기둥이 소박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 애련정이 그저 소소하다. 집의 중앙 사분합 문을 활짝 열고 앞을 내다보면 솟을대문 너머 작은 인공 연못에 자리한 사각형의 호연정이 한가하다. 자그마한 정자가 앙증맞다.

다시금 오솔길 같은 한적한 길을 따라 찾아든 곳은 북강정(北江亭)이다. 길 가 옆 우거진 숲에 둘러싸인 북강정은 원래 안동 석동동의 감성골에 있던 집으로 2004년 이곳 민속촌 길로 옮겨오게 되었다. 고택이 북쪽의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지게 된 이름이다.

정자의 주인은 고려 태사 김선평 선생의 후손으로 김신걸 공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다고 널리 알려졌다. 해서 김신걸 공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우(祀宇)라고 할 수 있다. 고택에서의 전통 체험이나 전통 악기 연주들이 심심찮게 울려 퍼지듯 북강정 역시 안동 국악단의 가야금 연주 등이 공연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자연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며 살았을 옛 성현의 멋과 향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즈음 걸음을 재촉하는 성급한 마음이 북강정의 감흥을 다 헤아리기도 전에 이미 달아나고 있었다.

야외 민속촌 끝자락, 한창 건물 보수 공사 진행 중인 동산서원도 있다. 처음 안동시 용상동에 있던 건물이었으나 도시계획으로 인해 이곳 성곡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입구인 유정문(由正門)과 동산서원, 사당 그렇게 3동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건물이다. 현재 영양 천씨 종회로 사용되며 사암 천만리 선생을 제향하는 서원임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주기 위해 참전한 명나라 천만리 장수로 구원병이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현재의 영양 천씨들은 천만리 장수의 후손들로 대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이 천씨의 본관은 중국이라 할 수 있겠다.

야외 박물관은 옛 선인의 삶의 모습을 직접 들여다보게 하는 곳이다. 나름 볼거리가 많은 야외 민속촌은 차츰 희미해져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벗 삼아 삶의 지혜를 배우며 살았던 선인들의 멋과 여유를 헤아리게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