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전통문화와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내린 지역으로, 오랜 세월 동안 정신문화의 중심지로 자리해 왔다. 특히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 퇴계 선생이 이곳에서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학문적 전통을 확립한 점은 안동을 ‘정신문화수도’로 불리게 한 주요 이유 중 하나이다. 선생은 단순한 학자를 넘어 올곧은 삶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되며, 그의 사상은 영남학파와 주리파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역사적·사상적 배경 속에서 안동은 유교적 삶의 방식과 가치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유교는 조선 사회를 500년 동안 지탱해 온 핵심 이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는 단순한 종교라기보다 인간의 도덕적 삶을 지향하는 생활철학으로서,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가족 간의 예절, 공동체 의식,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등은 모두 유교적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 속에서 이러한 유교 문화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가치의 중요성을 잊어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유교적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유교랜드를 찾는다.
안동시 문화 관광단지의 중심 건물인 유교랜드는 하나의 거대한 돔 형식의 멋진 박물관이다. 실내 원형 공원이라 할 수 있는 유교랜드는 유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2013년 7월 11일에 개관한 유교랜드는 지하 2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져, 유교의 근본 사상인 충효(忠孝)와 仁, 義, 禮, 知, 信 주제로 스토리텔링 테마파크형 체험박물관이다.
먼저 유교랜드 입구 천장과 벽에 늘어져 있는 한자어들이 유교와 관련된 언어로 와 닿는다. 안내 도우미인 양 입구에 서 있는 익살맞은 표정의 기룡이, 시루, 와룡이 캐릭터가 친절하게 오가는 손님들을 반긴다. 유교랜드는 인성교육을 위한 장소로 누구나 재미있게 즐기면서 체험하도록 구성된 곳이다.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가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특별히 어린이를 위해 많은 체험 공간을 두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놀면서 유교적인 문화를 접하도록 만들어졌다.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진 놀이냐에 따라 놀이도 재미있는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유교랜드의 공간은 메타버스 콘텐츠로 이루어졌다. 가상과 현실의 결합인 가상융합세계가 유교 문화의 체험을 즐기게 한다. 이를 말해주듯 지하 1층 매표소를 거치면 상상력과 창의력을 돋우어주는 실용적인 공간 옆으로 곧장 타임 터널이 나타난다. 입구에 들어가면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거나 혹은 깜깜한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타임 터널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어둠 속으로 들어서면 지난 각종 물질이 현대의 마천루로 다가오는 거대 빌딩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급속히 발전한 현대의 물질문명에 익숙하게 젖어 들어 길들어졌기 때문일까, 과거의 물건들이 낯설고 생소하다. 한 더미의 지난 물건들이 이제는 멀어졌지만, 한때는 유용하게 이용되었던 우리의 일상생필품이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낙후된 삶의 한 파편은 현대의 눈부신 발달에 미약한 발판의 과정이자 초석이었음을 감지한다.
한편 갈수록 바다와 강이 여러 이유로 오염되고, 현대 산업사회가 낳은 환경오염, 재난, 테러 등 지구촌의 각종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또한, 지난 세월을 건너면서 당시의 사회와 생활문화, 사건 사고 등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가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헤아려보게 한다. 이렇듯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과거를 발판으로 미래지향적인 삶을 이끌어나가도록 한다.
타임 터널을 건너면 본격적인 유교마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실내 바닥에 놓인 발 모양의 문양이 친절하게 관람 방향을 알려준다. 관람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복도 한쪽에 진열된 공예작품이나 벽에 걸쳐져 있는 다양한 그림이나 사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복도와 벽의 공간을 활용한 각종 작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뭇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지상 1층에 들어 가장 먼저 생화가 살아 숨 쉬는 미니 화단을 만난다. 보통 실내에는 조화 꽃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생화 꽃밭이 자리하고 있다. 습기를 머금은 뽀송뽀송한 흙 위로 생물들이 꿈틀거린다. 꽃밭 주변으로 싱그러운 꽃향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흰색, 보라색, 샛노란 얼굴을 활짝 펼친 팬지꽃 사이로 수석이 작은 난초들을 몸에 걸치고 있다. 꿈틀거리는 불가사리로 연상되는 알로에가 창을 뚫고 들어오는 해맑은 햇살에 사지를 쭉 뻗어 올린다.
유교랜드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공간은 지상 1층 놀이세상이다. 모션 게임존, 어린이 놀이 체험방, 에어바운스 놀이터 등이 그것이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레이싱 자동차 게임 등 다양한 놀이시설이 아이들을 잠시도 가만있게 하지 않는다. 특히 영유아 전용 놀이시설이 동화의 나라로 이끄는 착각을 불러낸다. 넓은 공간 창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밖의 전경들을 건너다보며 종횡무진 맘껏 놀이 세상에 취한다. 이렇게 1층은 영유아에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신나게 어울려 놀 수 있는 어울림마당으로 되어 있다.
시원스럽게 쭉 뻗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오른다. 2층은 크게 다섯 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선비정원을 비롯하여 우주, 세계를 상징하는 듯한 儒niverse(유니버스)가 있는가 하면 소년 선비촌, 청년 선비촌, 중년 선비촌이 연령대에 적당한 유교적인 삶과 철학을 익히고 즐기도록 한다.
2층 원형 전시실 중간 ‘선비의 정원’은 잠시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한다. 천정을 수놓은 각양각색의 나비 무리가 펼친 날개를 접을 줄 모르고 화사한 원색의 나비들 속에 단아한 어여쁨이 우러나오는 꽃들도 해맑은 미소를 흘린다. 나비들의 군무가 선비의 정원을 환희의 세상, 이상향으로 잡아끈다.
하트 모양의 단풍잎이 무성한 단풍나무 아래를 거닐고 폭포가 쏟아질 듯한 절벽 옆의 소나무와 버드나무 조형물 앞에서 서성인다. 한적한 자리에 앉아 사색을 이끌만한 전경이다. 그도 잠시 넓은 원형 정원 상단의 양쪽 전광판에서 미적인 전통감각이 우러나오는 영상과 세상의 지식을 모아 더 큰 지혜를 이루어나간다는 智에 대한 유교의 근본 사상을 하나하나 펼쳐 보인다. 쉼 없이 흘러가는 유교적인 철학이 올바른 인성을 갖게 하는 길잡이로 와 닿는다.
선비의 정원 한쪽 벽면을 차지한 유교랜드 캐릭터가 퍼즐 맞추기를 하게끔 한다. 독특한 외모를 가진 기룡이, 시루, 와룡이, 천둥이 캐릭터들이 선비로 다가오는 양반탈과 턱없는 이매탈이 말을 걸어올 듯하다. 양반과 이매 퍼즐 조각이 방문자의 손에 의해 맞혀지기를 기다리는 듯 여백의 공간에 흩어져 있다. 한 자락 마음의 여유를 내게 하는 공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니버스는 메타 버스로 가상의 창작 공간이다. 儒niverse 공간은 3차원 체험인 가상과 현실의 결합공간인 가상융합세계를 접하게 한다. 메타 버스는 3D 기반의 디지털 공간을 총칭하는 것으로 확장, 혼합, 증강, 가상 현실을 펼쳐 보인다. 우주와 세계를 초월한 가상의 3차원 플랫폼으로 현실 세계를 모호하게 한다. 가상의 공간은 손에 잡힐 듯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러낸다. 광활한 우주를 유영하는 각종 동식물과 사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접하게 해준다. 문득 오래전에 봤던 영화 ‘아바타’가 눈에 어른거린다. 가상 세계가 때로는 경직된 사고와 딱딱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소년 선비촌은 본격적인 유교적 삶의 문화를 접하게 한다. 마을을 지키는 천하대장군, 여장군 너머로 한 초가에 선비의 탄생이 있다. 현대의 출생과는 많이 이질적인 옛날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 족보, 촌수 익히기, 가족 호칭 등을 습득하도록 퀴즈로 풀게끔 되어 있다. 또한, 재미있는 전래동화 내용을 바탕으로 놀이를 하게 하거나 천자문, 삼강오륜을 놀이와 게임 속에 녹여내 유교의 실천 덕목이나 한자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익히도록 했다. 한쪽에 철봉도 있다. 이는 놀이도 체력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쉬어 가는 공간이기도 하리라.
옛날 학교라 생각할 수 있는 서당은 시조와 한문을 배우고 익히며 성현의 말씀과 유교 문화를 배웠다. 들판을 건너 서당으로 가는 길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시조와 풍류를 접하면서 당시의 사회상과 유명한 시조 문학을 되새기게 한다. 당시의 유교적 문화는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느낀다. 지난 문화는 현재의 초석이기에 현 소년들이 접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유익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늘의 이치로 땅을 다스리는데 입문할 만한 청년 선비와의 만남도 갖는다. 이를 말해주듯 우리 지역의 성리학 대가인 퇴계 이황 선생의 성학십도가 녹아 있는 비밀의 공간에 든다. 열 가지 그림으로 읽어보는 성학십도는 퇴계 선생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으로 천문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지침서다. 이는 성리학적 삶의 교본으로 여겨진다.
재미로 알아보는 나의 체질 코너에서는 태양인, 태음인이 무엇이며 체질에 따른 처방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한다. 언제 맡아도 자연의 향이 그득한 한약 냄새는 친근하기 그지없다. 약통과 한약 재료가 들어간 주머니가 천정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 현재는 신약이 보편화 되었지만, 여전히 그 옛날의 방식인 체질에 따른 치료와 처방도 널리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재의 책과는 다르게 그 옛날 고서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접해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서는 옛날 선비들의 전유물로 생각된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경전으로 하는 유학은 양심과 예의, 윤리 학문 등 생활 철학으로 인식된다. 유교적인 삶이 지향한 길을 따라 선비들은 과거 시험을 봤다. 선비들의 꿈인 과거 시험은 입신양명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특별히 우리 지역의 여성 군자이자 여성 선비인 장계향의 한글 음식 요리서인 『음식디미방』도 살짝 엿 보게 한다.
중년 선비촌에 들었다. 견고한 벽돌로 쌓인 성곽을 따라 총총히 서 있는 삼족오를 비롯한 다양한 깃발들이 전란을 예고하는 듯 기세등등하다. 미니 전시물들이 마치 고창전투의 현장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어디선가 결투의 함성도 메아리쳐 들려올 법하다.
후삼국 시대 때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맞이하여 고창(당시 안동의 옛 지명)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이때 고창의 태사 김선평, 장정필과 성주인 권행이 왕건을 도와 싸움에서 이기게 도왔다. 이후 고려의 시조가 된 태조 왕건은 그들의 공을 높게 사 김선평, 권행, 장정필에게 각각의 성을 하사했다. 그렇게 해서 개국공신인 삼태사 중 김선평은 신안동 김 씨, 권행은 안동권 씨, 장정필은 안동장 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를 말해주듯 갑옷으로 무장한 삼태사가 한자리에 앉아 고창의 지도를 펼쳐놓고 전투 작전을 논의하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중해 보인다. 이는 포토존인 조형물로 당시 역사를 헤아려보게 하고 삼태사의 역할을 가늠하게 한다. 다시 말해 삼태사가 忠과 義에 따라 우리 지역을 지켜내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창전투 시 사용했을 법한 대포가 성벽 사이에 진열되어 있다. 안동 지리에 밝은 삼태사의 지략과 전략에 따라 견훤은 속수무책 대패를 했다.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말을 타고 화살을 쏘는 시연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느낌을 준다.
노년 선비와의 만남을 위해 3층에 올랐다. 먼저 양쪽 벽면에 우리의 민화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신나는 유교 놀이터와 유교마을 3D 색칠 놀이 체험이 디지털 콘텐츠의 세상으로 이끈다. 한쪽에선 유교에 입각한 손님맞이 예법이 옛날의 전통과 격식을 보여준다.
차전놀이 콘텐츠 체험이 디지털 정보의 경험을 맘껏 누리게 한다. 체험을 통해 차전놀이의 유래를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태조 왕건과 견훤의 싸움에서 유래한 차전놀이(동채싸움)는 우리 지역의 무형문화재이자 향토문화행사에서 빠지지 않는다. 정보를 전달하고 차전놀이의 시연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콘텐츠다.
미디어파사드 콘텐츠를 도입한 선유줄불놀이 영상은 한 편의 실경(實景)과 마주하게 한다.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선유줄불놀이는 선비들의 놀이를 재현해 놓았다. 어둠 속에서 주렴처럼 쏟아지는 빛의 줄기들이 환희의 순간으로 이끈다.
잠시 조선 시대의 유명 문인들을 훑어보고 참 선비촌으로 들었다. 자연을 읊은 감흥과 학문을 통한 성정을 읊은 이황 선생의 도산십이곡은 언제 읽어도 정감 있고 편안하다.
때가 되면 누구나 반드시 건너야 하는 것이 있다. 이승의 다리를 건너면 선비의 죽음이 어떤 과정으로 상례가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상례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비롯하여 가문 세우기 및 전시 콘텐츠와 선비의 생애를 기리는 묘비, 서애 류성룡 묘갈, 학봉 김성일 신도비 명, 율곡 이이 신도비 명, 퇴계 이황 묘갈 자명 등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가상의 3차원 플랫폼인 미디어아트에 들었다. 3D 기반의 디지털 공간은‘미래의 빛’이란 주제로 환상적인 꽃의 파노라마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이어 정적인 수묵담채화로 다가온 시가 된 김삿갓 소나무, 야생의 동물 세계, 수중 생물의 세계 등이 눈을 즐겁게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유교랜드는 장시간 머물게 하는 공간으로 아이들에게는 도덕적 상상력을, 청년들에게는 삶의 지표를, 장년들에게는 책임감을, 그리고 노년들에게는 삶의 긍지를 심어주는 최적의 장소다.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전통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이는 선조들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을 알아가고 올바른 인성을 쌓아가는 과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