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암, 마당은 비어 있는 듯, 고요한 가운데 가득함이 있다.
우리 지역의 사찰을 대표하는 봉정사는 고건축박물관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풍부한 건축물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절집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내공은 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깊다. 국보 2점(극락전, 대웅전), 보물 6점(고금당, 화엄강당, 영산회괘불, 영산회상도, 아미타설법도, 목조관음보살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삼층석탑, 안정사여래좌상, 만세루), 문화재자료 1점(동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점(영산암)까지 지정문화재의 숫자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 불교사에 커다란 획을 긋고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영산암은 극락전과 대웅전에 가려서 조금은 비켜나 있지만 봉정사는 바로 이 영산암이 있기에 봉정사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영산암은 대웅전에서 동쪽에 위치한 요사채(무량해회)를 지나 계곡을 메워 낸 계단을 오르면 아름드리 참나무 두 그루가 계단을 사이에 두고 일주문인양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곳을 지나면 비탈 위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영산암은 부처가 설법할 때면 꽃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뜻의 우화루 하부를 통해 출입한다. 우화루 밑을 지나 암자의 안마당에 닿으면 고건축의 미학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도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마당의 멋스러움에 넋을 빼앗기게 된다. 마당은 비어 있는 듯, 고요한 가운데 가득함이 있다. 마당의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동산을 만들어 기암괴석을 옮겨놓고 그 위에 멋스럽게 휘어진 소나무와 관상수를 비롯하여 계절을 다투며 다양하게 피어나는 꽃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속세와 구별되는 때 묻지 않은 순수를 만날 수 있다. 마당에 오르면 양편에 요사채인 송암당(松巖堂)과 관심당(觀心堂)이 있고, 단을 높인 안쪽에 법당인 응진전과 삼성각이 가로막아 전체적으로 마당의 공간을 한정하는데, 고요가 깊게 깔려 있다. 마당은 손바닥만 하고 그것도 두 단으로 갈라져 있으며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볼품없는 받침 위에 서 있다. 건물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쓰인 부재도 대단히 부실하다. 더구나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난간과 계단은 아슬아슬하기까지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지배하는 침묵과 고요의 깊이와 맑기가 여간 아니어서 이토록 절묘한 대비를 통해 한옥의 멋스러움을 드러낸 목수의 내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러한 묵직함과 엄숙한 기운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봉정사 영산암
비움을 통해 얻어지는 채움의 미학, 완벽하지 못해 더 아름다운 영산암이여~
영산암 마당에서 느끼는 인상은 비움을 통해 얻어지는 채움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완벽하지 못해서 더 아름답다는 역설이 통하는 불가해한 비움을 영산암에서 우리는 마주할 수 있다. 그렇다 그것은 자유였다. 완벽하다는 것은 비움이 아니므로 의도적으로 완벽을 버린 까닭에 얻은 자유로움이다. 그래서 여기서 육신은 더욱 편안하고 영혼은 더없이 자유로우니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정진을 통해 중생들의 참된 마음을 바라보는[觀心] 영산암이 지닌 절대적 자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간 것은 아닐까?
송암당과 우화루, 관심당을 이어주는 툇마루와 누마루는 서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다. 이러한 것들의 다양함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재창조하는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몇 계단을 올라 응진전의 영역으로 오른다. 응진전은 나한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빛이 바래고 낡아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것 같은 편액(응진전)을 머리에 이고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 부처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협시불과 16나한을 모셨다. 나한의 표정과 자세도 가지각색이다. 등을 긁고 있는 나한 앞에 서면 그 천진스러움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영산암이 주는 상징적 코드가 자연과 합일할 수 있는 내면적 자유라고 표현한다면 그 실현은 응진전의 벽에 그린 민화를 통해 구도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고즈넉한 절집에서 마주하는 우리 민족의 생각을 담아낸 응진전의 벽화는 가히 감동 그 자체로 다가온다. 선조가 남긴 회화 작품 중 민화만큼 민중들의 마음과 생각을 잘 보듬고 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진솔한 감정까지 화폭에 옮겨 표현하고 있는 그림은 없다. 민화는 민중들에 의해서 그들이 함께 공유하고 느끼는 기쁨과 아픔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작은 소망과 기원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민화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거짓 없는 우리들의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표현 방법에서도 꾸밈없고 잘난 척하지도 않으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저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하였지만,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혼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응진전 외벽에 그린 까치와 호랑이 그림/호작도(虎鵲圖)
인욕바라밀을 수행하는 용의 마음으로 갑진년을 맞이하자!
응진전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민화의 소재는 까치와 호랑이, 사슴, 용 등 다양하다. 응진전 왼편 외벽에는 까치[鵲]와 호랑이[虎]를 소재로 해서 그린 호작도를 볼 수 있다. 까치와 호랑이는 우리의 옛날이야기, 노래, 민속극에까지 두루 등장할 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가장 잘 통하는 아주 친숙한 동물이다. 이 그림에는 까치와 소나무, 호랑이가 함께 화폭에 그려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까치는 새로운 소식을 전하거나 반가운 손님이 오는 것을 미리 알려주기도 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길조로 인식되어 사람들과 가장 친밀한 새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까치는 은혜를 아는 의로운 동물로 묘사되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 몸을 던지면서까지 은혜에 보답하는 영물로도 그려지기도 한다. 까치와 함께 호작도의 소재가 되는 호랑이는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는 신통함이 있다고 믿었기에 옛 그림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하여 일반 민가에서는 호랑이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여두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풍습이 전해왔다. 동국세시기에는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정초의 세화에 호랑이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호랑이의 용맹성을 빌어 나쁜 기운을 막고자 함이었다. 이처럼 호랑이는 산신령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나쁜 귀신을 막아 주고 착한 이를 도와주는 영물(靈物)로 여겨져서 정초(正初)에 붙이는 세화(歲畵)의 주요 소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이 그림에는 탄탄한 네 발로 버티고 서 있는 호랑이의 위엄은 온데간데없다. 재빠른 날갯짓으로 요리조리 피하며 호랑이를 귀찮게 하는 까치가 못내 성가신지 꼬리를 흔들어 쫓고 있고, 이를 바라보는 까치 한 마리는 꽁지를 치켜들고 재미있게 내려다보고 있어 장난기마저 느끼게 한다.
응진전의 오른쪽 외벽에는 용을 낚는 놀라운 그림을 볼 수 있다. 갈고랑이 낚시에 코가 꿰어 몸부림하는 용과, 용을 잡으려고 안달하는 두 명의 어부가 팽팽하게 당겨진 동아줄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그림이다. ‘인욕바라밀’ 수행을 마치고 인간이 되려고 한 용은 난데없는 어부의 낚시질에 걸려 그만 속수무책이다. 웃통까지 벗어 던지고 있는 힘을 다하여 용을 끌어당겨 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인간의 모습과 아무리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서원하던 용이라 하더라도 어찌 목숨을 내어놓기가 그리 쉽겠는가. 실랑이 속에 용이 몸부림치니 파도가 크게 일어 넘실거리고, 꽃봉오리를 터뜨린 백련이 파도에 쓸린다.
봉정사 응진전/ 용 낚시
그러나 전능한 힘을 지닌 용이라 할지라도 불도를 닦아 다음 생을 기약하는 짐승의 몸이지만 업보를 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쓰럽게 드러나고, 작은 악이라도 짓지 않으려는 듯 불을 토하지도 않고 위엄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욕심에 체념한 듯, 빈 마음이다. 용의 눈알은 악의는 전혀 없고 선한 기운마저 든다. 잡힌 자가 잡으려는 자를 위로하는 듯한 해학미가 흘러나온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서원으로 스스로 잡혀준 줄도 모르고 용을 잡았다고 신이 난 두 사람은 욕심 가득한 얼굴에 웃통을 벗어 던지고 반바지 차림으로 긴 밧줄을 용의 콧수염에 묶어서 당긴다.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 던진 용은 오히려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좋은 듯 웃고 있다. 용의 두 뿔엔 턱밑 푸른 수염을 가지런히 말아서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용의 흰 콧수염을 밧줄로 묶어서 당긴다? 상상을 뛰어넘는 해학과 감명을 느낀다.
봉정사 송암정/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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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용(龍)은 변화무쌍한 자신의 능력을 바라지 않고 오직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불하기를 갈구한다. 용의 체면, 용기, 전지전능 다 버리고 오직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 수행으로 인간으로 몸 받기를 원한다. 그만큼 육도중생 중 인간이 최고라는 의미이다. |
이렇듯 용의 서원이 담긴 경전의 이야기를 벽화에서 만날 수 있는 곳, 또한 응진전의 벽화이다. 이 그림에는 용을 잡으려는 인간의 욕심이 한없이 드러난다. 용왕으로의 권위와 능력을 모두 버리고 오직 포살계를 지켜 인간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서원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응진전 벽화 앞에 서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인욕바라밀을 수행하고 있는 용처럼 나 또한 어떤 욕됨을 견디며 살고 있는지 하늘의 순리를 ?으며 살고 있는지 반문해 본다. 영산암은 바깥세상과 통하며 서로가 투과한 빛을 주고받는다. 전각들의 단청이 사라져간 긴 시간이 주는 아름다움이 잔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서설(瑞雪)에 얼어버린 산사를 녹이려는 겨울의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된 전각을 부딪치면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첫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 내린 꽃비(雨花)처럼 영산암에 떨어진다.
어느 해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갑진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시나브로 다가오는 격랑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를 인욕바라밀을 수행하는 응진전의 용으로부터 배우자. 우리 사는 세상이 아무리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리는 따뜻한 함박눈처럼 수졸(守拙)한 마음이 되어 갑진년을 맞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