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문화 FEEL 로고
안동구석구석
안동느끼다
안동머물다
안동역사를품다
안동이모저모
기사검색
뉴스레터신청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고기는 연못에서 뛴다. 연어헌(鳶魚軒)
 


우리는 흔히 세상사 한갓 부질없다고 하면서도 백 년도 못사는 세상을 마치 천 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며 살아간다. 이렇게 사는 삶이 안타까운 나머지 퇴계 선생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삿된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순리를 따르며 사는 삶을 강조하며 이를 ‘알인욕 존천리(遏人慾 存天理)’라고 했다. 또 선생은 선비가 지켜가야 하는 덕망 중에 으뜸은 수졸(守拙)한 삶이라 정의하며, 이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그 낮음보다 더 낮게 자기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을 바로 처사적 삶이라고 했다. 낙동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정자 이야기를 쓰면서 뜬금없이 처사적 삶을 화두로 올리나 의아하겠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퇴계의 가르침을 따르고 선생께서 강조한 처사적 삶을 몸소 실천한 선비가 있었으니 오늘 답사하게 될 ‘연어헌’과 정자의 주인인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호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낙동강을 굽어 보며 자리잡고 있는 청성산이다.(가운데 우뚝 솟은 산) 송암 권호문의 연어헌과 학봉 김성일의 석문정을 품고 있다. 송암은 이 산을 “마치 큰 거북이 바다에서 몸을 솟구치며 머리를 들고 서 있는 듯하다.”고 성산기에 적고 있다.

 

연어헌은 지난 호에 소개한 청성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석문정 아래 자리 잡은 정자로 조선 중기의 학자인 송암 권호문이 자연과 벗하며 살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당호인 연어헌(鳶魚軒)의 연은 솔개이고, 어는 물고기이다. ‘연어’는 ‘연비어약’의 줄임말이며, 이는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고기는 연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의 줄임말로 시경(詩經)에서 취했다. 이는 바로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조화 바로 그 자체를 설명하는 말로 쓰인다. 성리학에서는 이 구절을 천리(天理)가 천지 사이에 자연스레 드러나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연어헌(鳶魚軒)의 연은 솔개이고, 어는 물고기이다. ‘연어’는 ‘연비어약’의 줄임말이며, 이는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고기는 연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의 줄임말로 시경(詩經)에서 취했다.

 

연어헌은 청성산 기슭에 낙동강을 굽어보며 자리 잡고 있다. 당호를 ‘연어’라 한 것에 대해 선생은 「연어헌기」에서 천지만물 중에 뭇 형상과 사물은 음양의 변화 속에 이루어진 조화가 아님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솔개가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노는 것은 모두 스스로 날고 스스로 뛰노는 것이 아니라 날고뛰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날고뛰는 것에서 천지 기운의 변화를 알아야 하고 그 이치를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천지간에 태어났으므로 이 같은 변화의 움직임과 그 조화의 이치를 깨우쳐야 한다. 나는 천지의 도를 궁구하고 조화의 근원을 탐구하고, 사물의 이치를 미루어 내 마음을 닦는다.”라고 하여 연어헌을 지은 뜻이 청성산의 뛰어난 풍광을 즐기고자 함이 주목적이 아니라 고요한 곳에서 마음을 닦고 천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자 함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연어헌을 짓고 난 몇 년 뒤 선생은 관물당(觀物堂)을 짓는다. 관물당을 지은 것은 연어헌에서 보여준 선생의 생각을 관물당을 통해 완성해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선생은 ‘관물’이라 함은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은 사물의 종류일 뿐이다. 물이 스스로 물일 수 없는 것은 천지가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천지가 스스로 물을 낳을 수 없는 것은 이치[理]가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고 관물당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로써 이치가 천지의 근본이 되고, 천지가 만물의 근본임을 알게 된다. 천지로써 만물을 보면 만물도 각각 한 물건이고, 이치로써 천지를 보면 천지 또한 한 물건이 된다. 사람이 능히 천지 만물을 보고 그 이치를 궁구하면 인간 됨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만물이 다 천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치의 측면에서는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격물치지에 힘을 쏟아 사람이 다할 바를 얻으면 그것이 관물의 의미일 것이라 하였다.

 

연어헌과 관물당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일관된 관심은 스승 퇴계 이황으로부터 받은 성리학적 이론적인 틀과 수양론적 자세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는 연어헌을 지어 자연 속에서 천리의 움직임을 깨닫고, 관물당을 지어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의 도리를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관물당; 송암은 이 집을 짓고 당호를 관아당(觀我堂)이라 했으나 스승인 퇴계가 관물당으로 고쳐주었다고 전한다. 이는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 대상을 눈으로 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이치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의 연어헌은 1958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2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측에 각각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누각 아래의 기둥을 약간 높게 하여 누각식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연어헌 출입문

가운데 마루를 두고 좌우측에 방을 부설했다.

 

연어헌의 주인 권호문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이다. 7,8세 나이에 이미, “창이 밝으니 해가 솟은 줄 알겠고, 산이 희니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네.[窓明知日上, 山白見雲生]”라는 시구를 지을 정도로 천부적인 시적 재능을 보였다. 15세 때부터 외종조부인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류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과 교분이 두터웠다.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 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 아래에 연어헌을 짓고 은거하였다.

 

연어헌에서 바라보는 전경. 도시가 발전하고 개발되면서 옛정취는 많이 잃어버렸지만 정자 앞을 흐르는 낙동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장하다.

 

송암은 그 기상에 있어 퇴계와 닮은 점이 많았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일찍이 “퇴계 선생의 고요하고 묵묵하고 온화하면서 고상한 기상을 오직 이 사람만이 닮았다.”라고 말했다. 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송암이 살던 집을 지나면서, “평생을 공평하게 논한다면, 백세(百世)의 스승이 될 수 있네.”라고 그를 높이 추앙하였다. 퇴계의 문하에는 조정에 나가 벼슬하여 경륜을 편 인물도 많지만, 초야에 묻혀서 학문 연구와 심성의 수양으로 일생을 보낸 제자들도 적지 않는데 연어헌의 주인인 송암 권호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선생은 일생동안 청성산 아래에서 은거하면서 학문 연구와 자기 수양에 정진하며 일생을 보냈다. 학행(學行)으로 여러 차례 추천을 받아 참봉, 교관(敎官) 등의 자리에 임명되었으나, 한 번도 벼슬에 나간 적이 없었다. 일례로 고향 친구인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이 이조(吏曹)에 있으면서 6품의 관직에 천거하려고 하자, 송암은 자기가 지은 한거록(閑居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뜻을 내비치자 백담은, “이 친구의 뜻이 이렇게 굳은데, 어찌 꼭 억지로 꺾어야 하겠나?”라고 말하고는, 더 이상 벼슬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승인 퇴계는 ‘깔끔한 산림의 기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그의 삶을 높이 평가하였다. 시 읊기를 좋아하여 많은 한시를 남겼고, 한글로 된 시조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과 경기체가(景幾體歌) 형식인 ‘독락팔곡(獨洛八曲)’ 등의 작품도 남겨 국문학사의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과 도의(道義)로 깊이 사귀었다. 뒷날 선생의 학덕을 기려 청성서원(靑城書院)에 제향했다. 동문인 서애는 그를 ‘백세(百世)의 사표(師表)요 강호(江湖)의 고사(高士)’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문집 14권 5책이 있다.

 

연어헌에도 가을색이 완연하다.

 

연어헌은 청성산 아래 기슭에 보일 듯 말 듯 서 있다. 옛날에는 산을 등지고 바로 앞에 강을 내려다보는 안온하고 호젓한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정자 앞으로 수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고 강에는 보를 막아 옛 경치만은 못하다. 연어헌 중수기에 “낙동강 기슭, 성산(星山) 아래에 연어헌이 있다고 적혀 있고, 강과 산, 물고기와 새, 안개와 구름, 대와 나무, 강에 부는 바람, 산 위에 뜬 달을 노래하고 있으니 이것들은 바로 당시의 편안하고 한가로운 승상(勝賞)이어서 천 년 후에라도 상상해보고 우러러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강과 산기슭 사이에 큰 도로가 있어 옛 풍광은 짐작하기 어렵다. 길가에서 보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겨우 형체를 어슴푸레 드러낼 뿐이다. 더구나 연어헌 대문 바로 앞 정자의 옆 마당에 ‘진원사’라 이름 붙인 굿당이 있어 옛 정취를 느끼기에는 불편한 감이 크다고 하겠다.

 

정자에는 스승인 ‘퇴계 선생의 시’와 권호문과 가까워 청성산을 나누어가졌다는 ‘학봉 김성일의 시’ 그리고 ‘서애 류성룡의 시’가 걸려 있어 찾는 이를 반긴다.

 

스승 퇴계의 시

젊을 때 놀던 자취인 성산이 기억나는데
산천의 형승이 먼 사이에 보인다.
백발이 즐거이 서식한단 말 들으니
책을 가지고 다시 올라보고 싶네.

 

김성일의 시

푸른 강 서쪽 가에 내 머물러 있나니 / 滄江西畔爲淹留
인간 세상 세월이 빠르다고 뉘 말했나 / 誰道人間歲月遒
내일 아침 어부가 뱃전 치며 떠난 뒤엔 / 明發漁翁扣枻去
창랑의 맑고 탁함 누구와 얘기하리 / 滄浪淸濁與君謀

 

송암을 방문하여 주인에게 주다.

바위 아랜 맑은 시내, 시냇가엔 산인데 / 巖下淸溪溪上山
사립문은 한낮에도 오히려 잠겨 있네 / 柴門當午尙深關
솔 그늘은 뜨락 들어 찬 기운이 감돌고 / 松陰入院寒生玉
버들빛은 처마 비춰 푸르른 빛 어리네 / 柳影迷簷綠欲班
온 세상이 호구를 다 거꾸로 입었는데 / 擧世狐裘皆反着
누가 능히 거북점 쳐 비경에다 집 지었나 / 孰能龜卜破天慳
벗님께선 유유하게 지내는 사람이라 / 故人自是悠悠者
오래도록 밝은 창에서 공자 안자 배우누나 / 長向明窓學孔顔

 

류성룡의 시 / 송암을 지나며 권호문을 생각하다[過松巖懷權章中]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이니 / 詩老乘雲久
외로운 마을 지나는 나그네 슬퍼지네 / 孤村過客悲
일생의 일을 평론하면 / 平論一生事
백세의 스승이라 할만하네 / 堪作百世師
시린 구름 빛 아득한데 / 迢遞寒雲色
늙은 나뭇가지 쓸쓸하여 슬픔을 자아내네 / 悲凉老樹枝
옛 벗의 뜰엔 가을 풀만 무성하네 / 秋草正離離

 

청성서원이 자리 잡고 있는 막곡리에서 바라 본 청성산

 

석문정과 연어헌을 답사하고 돌아서 내려오는 길,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귀를 맑게 하고, 시냇가에 비치는 달은 내 마음속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던 그리움까지 들추어내는 시린 듯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그 낮음을 지키며 살고자 애 쓴” 선인들의 수졸한 삶을 통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이 순간은 내게 다시 오지 않을 찰나의 순간을 엮어가는 삶이지만 그 삶에 의미가 부여되고 누군가의 힘에 의해 설레임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음 또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석문정과 연어헌은 구름 위의 집이다. 구름 위의 집은 영욕이 없는 세상이다. 세상 모든 시름으로부터 무거운 짊 내려놓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 ‘日落西山月出東’ 해가 서산에 지니 달이 동녘에서 뜨듯이, 저녁노을과 같이 한 순간 붉게 불태웠던 학봉과 송암의 두터운 마음을 생각한다. 서산으로 지는 해와 같이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떠오르는 달처럼 환하게 우리 곁에서 빛날 것이다.

 
 
목록보기
 
안동필소개한국정신문화재단개인정보취급방침뉴스레터신청뉴스레터보기관리자

copyright (c) 안동문화필 All rights reserved.
발행처 : (36709)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월천길 300 한국문화테마파크, TEL 054-840-3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