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즐기다
아이들의 쉼터이자 마을의 평안을 지켜준 당나무, 용계은행나무
경북 안동시 길안면, 사무소에서 914호선 지방도를 따라 길안면사무소에서 10분쯤 가다보면 천연기념물 제 175호(1966년 1월 13일 지정) 용계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나무높이는 37m, 뿌리부분의 둘레만해도 16m, 가슴둘레는 14.5m에 달하는 큰 나무이다. 이 나무의 가슴둘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며, 수령은 7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한양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은행나무 계(杏契)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7월이면 해마다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심고 제사를 지내게 된 유래에 대하여 한편의 이야기가 전한다.
원래 용계마을에는 탁씨가 살았다고 한다. 깊은 산속에서 나무를 해 가며 살 때에는 지금의 용계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곳이 집터였다. 탁씨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건바골 들어가는 건너편 등성에 탁씨 딸의 묘가 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탁씨의 딸이 세운 것이며, 처녀의 제사는 현재 탁씨 일가가 지내고 있다. 처녀가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를 세우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어느 날 처녀는 강가에 있는 하얗게 까놓은 은행나무가 물에 둥둥 떠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처녀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은행나무를 주워 부뚜막에 묻어 놓고 연속하여 물을 주었다. 물을 주고 정성을 들이니 곧 은행나무가 살아났다. 촉이 올라오면서 점차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은행나무는 점차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처녀는 죽게 되었다. 이후 용계마을에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여 권씨도 들어오고, 이씨도 들어오고 하였다. 본래 용계마을에 살던 탁씨 가문은 점점 가세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상노인의 꿈에 처녀가 현몽하였다. “내가 저 건너편에 있는 은행나무를 살린 처녀입니다. 나를 동네 성황으로 세워 주면 이 동네를 편안하게 해 주겠습니다.” 알고 보니 상노인 한 사람에게만 현몽한 것이 아니라 동네 몇 사람에게 그렇게 현몽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용계당이 세워졌다. 용계당의 고리짝에는 치마와 저고리를 한 벌을 넣어 두었고, 용계당 주위에는 돌담을 해 놓았다. 언제나 정월 열나흗날 수리를 하고, 정월 보름날에는 제사를 지냈다. 수리할 때는 안에 들여다보아 버들가지로 만든 고리가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수리하였다.
-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안동시사』, 1999.
이 외에도 국가적으로 큰일이 있을 때면 큰 짐승처럼 울어대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줬으며, 어린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놀다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다는 등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무속인들이 찾아와 나무의 영험함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본래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장의 운동장 한편에 서 있던 용계은행나무는 학교 아이들의 쉼터였을뿐만 아니라 마을의 평안을 지켜준 당나무이기도 했다. 평화롭게 서 있던 은행나무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87년 임하댐 건설계획 때문이다. 댐이 완공되면 마을뿐만 아니라 나무까지 물속에 잠겨야만 했다. 뿌리부분이 물속에 잠겨버리면 산소부족으로 고사할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당시 댐공사 시행청이었던 사업기지개발공사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식불가 방침을 내렸다. 이식 후 소생확률이 전혀 없고 1,700t으로 추정되는 전체 중량을 이동 운반할 수 있는 장비가 없으며, 나무가 있는 곳까지 대형트럭이 지나갈 수 있는 도로를 신설해야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은행나무에 대한 신앙으로 안동지방에선 작업을 동원할 인부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1986년 산림청 임업시험장에서 은행나무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나 뿌리가 물에 닿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18m정도 높이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경상북도에서 12억의 예산을 투입해 뿌리 주위를 모두 파낸 다음 뿌리 밑 부분을 흙과 함께 동여매 초대형 크레인으로 하루 10~30cm씩 나무를 들어 올리면서 3년간 나무 위치를 현재보다 18m 높이는 상식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공사를 맡은 대지개발 대표자는 공사에 실패할 경우 공사비를 받지 않겠다는 공증서를 경상북도에 제출하여 은행나무 살리기에 강한 의욕을 보이기도 하였다.
천연기념물을 살려야 한다는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시작했지만 높이 37m, 둘레 14m, 무게 1,000t의 700살 은행나무를 수직으로 15ｍ나 들어 올리는 작업이 별 탈 없이 성공하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3년 5개월 동안 진행된 용계은행나무 상식 공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당시 뿌리의 80%가 잘려나가 영양분과 수분 공급을 스스로 잘 해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흘러 안정적인 정착을 하였다. 50kg짜리 가마니로 10가마는 족히 모을 수 있을 만큼 은행이 많이 달렸던 옛날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옛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한다.
<현재의 용계은행나무>
나무 뒤편으로 은행나무 전시관이 운영중이다. 전시관에서는 공사 당시의 사진자료, 은행나무에 대한 기본 상식 등 여러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안동시에서는 매년 예산을 세워 영양분 공급, 병충해 구제, 토양 개량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용계은행나무 종자로 키운 묘목을 분양하고 있다.
용계은행나무는 아이들의 쉼터이자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던 당나무로 마을공동체 상징물의 역할을 700여 년 동안 착실히 수행해왔으며, 이제는 물속에 갇힌 옛 마을의 모습을 상기시켜주는 소중한 나무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글 : 온양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호일
